[전라도 돋보기]골목마다 추억이 켜켜이..광주 버드리 야구마을(1편)

작성 : 2024-07-09 09:49:34 수정 : 2024-07-11 09:06:35
'도깨비시장' 사라지고 문 닫은 가게 즐비
도시재생으로 환경 개선불구 공동화 여전
야구 경기 날 반짝 인파..그나마 주차 몸살
반지하 BBS 본부 등 5·18 아픈 상흔 남아
[전라도 돋보기]골목마다 추억이 켜켜이..광주 버드리 야구마을(1편)

▲예전 유림숲이 있었던 마을 유래를 기록한 임동(林洞) 표지석

프로야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집 앞, 골목길 가리지 않고 주차할 만한 곳은 어디든 차들이 빽빽이 들어찹니다.

야구를 즐기러 오는 관중들과 그들을 상대로 먹거리와 응원 도구를 파는 상인들이 뒤엉켜 경기 전부터 후끈 열기가 달아오릅니다.

관중들의 환호성에 주민들은 경기를 보지 않고도 어느 팀이 이기고 있는 지 직감적으로 알아챕니다.

광주광역시 북구 임동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맞은편, 일명 '버드리 야구마을'의 풍경입니다.

▲'야구의 거리' 안내판

◇ 적은 유동인구..20년 이상 노후 건물 많아
옛 전·일방 공장과도 이웃한 버드리 야구마을은 골목마다 추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오랜 동네입니다.

방직공장 이전으로 유동인구가 적고, 20년 이상 된 건물이 90%가 넘는 주택가입니다.

2020~2022년 도시재생 뉴딜사업 시행으로 골목길 포장과 주차장, 가로등, CCTV(방범시설) 설치 등 생활환경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예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옛 방직공장 담장을 따라 조성된 '야구의 거리'

야구장 맞은 편에는 임동119 안전센터가 위치해 있고, 그 옆으로 자그마한 소공원이 조성돼 주민들이 쉼터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습니다.

난간 아래 서방천에는 시냇물이 흐르며 새들의 놀이터가 됐습니다.

서방천은 한때 시멘트 포장으로 덮여 복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여름철이면 물난리를 겪기 일쑤였습니다.

동네가 뚝방보다 지대가 낮아 빗물이 도로를 타고 흘러 상가와 집 안까지 들이닥쳐 가재도구들이 흙탕물로 뒤범벅이 되곤 했습니다.

후에 복개를 걷어내고 하천 정비를 통해 수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친수공간에서 잠깐의 상념을 흘려보내고 유운교 다리를 건너면 오른편에 5·18 당시 계엄군들이 진을 치고 숙영하던 전남중·고등학교 부지가 나옵니다.

이곳에는 현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맞은편 유운교 부근에 세워진 오월길 안내판

왼편으로는 한때 구두닦이들이 모여 집단생활을 하던 BBS 본부가 있었던 건물이 서방천 방향으로 서 있습니다.

이 건물 반지하실에서는 1980년 5월 계엄군에게 끌려온 무고한 시민들이 구타와 고문 등 인권유린을 당한 가슴 아픈 현장이라는 소문이 전해져 오고 있지만, 이 사실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당시 BBS 본부에서 생활하던 구두닦이들은 5·18 이후 종적이 사라져 더 이상 그들의 소식을 들을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 적십자사 광주봉사관 '마을의 터줏대감'
천변을 따라 지어진 건물들 옆으로 대한적십자사 광주봉사관이 보입니다.

적십자사 광주봉사관 건물은 약 600평 면적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로 60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킨 마을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적십자사 광주봉사관에서 빵급식 봉사를 하는 자원봉사자들 [적십자사]

봉사활동의 거점 센터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삶의 용기를 북돋워 주는 '희망의 풍차'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는 봉사관은 임동행정복지센터, KIA타이거즈 등 여러 기관·단체와 협력하여 취약계층에게 빵배급, 이·미용봉사, 옷 수선 등 돌봄지원과 후원 활동을 벌입니다.

광주봉사관 오종희 실장은 "8월부터 리모델링을 실시한 후 10월부터 무료 급식소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적십자사 마당 쪽문을 나서면 주택가 골목으로 통하는 길이 있습니다.

골목에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벽화와 정감 어린 문구들이 방문객을 반겨줍니다.

모퉁이를 돌면 동네 어르신들의 쉼터 '사랑 경로당'이 있습니다.

▲벽화가 그려진 버드리 야구마을 골목길 풍경

가정집을 경로당으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는데, 마당에는 손바닥만한 텃밭도 가꿔져 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고, 더위와 추위를 피하며 서로 어울림의 시간을 보냅니다.
◇ 필요 없어진 철길..사라진 도깨비시장
사랑경로당을 지나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널찍한 길이 나옵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새로 포장된 길 양옆으로 오래된 점포들이 빛바랜 간판을 힘겹게 붙잡고 있습니다.

예전에 이곳은 '도깨비시장'이라 불리는 노점상 골목이 있었습니다.

이 시장은 인근 방직공장에 유류와 원재료를 실어나르는 기찻길이 있을 당시에 생겨나 한동안 말바우시장을 능가할 정도로 크게 번창했었습니다.

주변 농촌지역 주민들이 새벽 일찍 농사지은 채소와 과일 등을 보따리에 이고 와서 팔았습니다.

▲40년간 장사를 했던 도깨비시장을 떠나지 못하는 주길용·김복순 씨 부부

그러나 방직공장으로 통하는 철길이 필요 없게 되면서 자연히 도깨비시장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은 채 텅 빈 거리로 남아있습니다.

'때까우집', '대포집', '수현식당' 등 선술집 한 두 곳만이 자리를 지키며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토박이 주민과 상인들은 아직까지도 활력 넘치던 옛 시장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장사를 하다가 접고 폐지를 주워 생활하고 있는 70대 주길용·김복순 씨 부부는 "40년간 잡화점을 하며 돈을 벌어 자식들을 대학까지 가르쳤다"고 지난 날을 회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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