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 장성 산골에서 문학 '혼불' 팔순 문수봉 작가의 '귀거래사'

작성 : 2024-02-09 17:43:48
"열정을 다해 살아온 인생, 글로 새겨두고 싶어"
인간 삶 속에 깃든 희로애락 시와 소설로 풀어내
칠순 넘어 늦깎이 등단, 시·소설 등 작품집 7권 펴내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태국 여행중 콰이어강 부근에서 포즈를 취하는 문수봉 작가. 사진 = 문수봉

"인생은 바람과 구름처럼 한번 지나가면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매 순간 열정을 다해 살아온 날들이 값진 것이었다고 따뜻하게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글에 혼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명예퇴직한 후 장성 북하면 중산리 명지산 깊은 산속에서 글쓰기로 노년을 보내고 있는 81살 문수봉 씨.

그는 15년 전 호흡기 질환 요양차 마련해 둔 이곳 산장에 거처하며 집필 활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 수필로 처음 문단에 데뷔한 이후, 시와 소설로 영역을 넓혀가며 꾸준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펴낸 작품집은 시집 '달보고 별헤며', '빗방울꽃'과 수필 '내 삶의 여백', '사랑과 증오의 사잇길', '바람에 뒹구는 낙엽처럼'이 있으며, 소설로 '따이한의 사랑과 눈물', '삿갓배미 사랑'이 있습니다.

▲장성 북하면 중산리 명지산 숲속에 자리한 문수봉 작가의 집필실. 사진 = 문수봉

◇ 눈물겨운 인생 역정, 진솔하게 풀어내

그의 문학적 근원은 인생 체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비록 장르는 달라도 저마다의 문맥 속에 깃들어 있는 모티브는 삶의 표층에서 얻어진 것들입니다.

가난한 가정환경 속에서 태어나 맨몸으로 헤쳐가야 했던 눈물겨운 인생 역정을 진솔하게 풀어낸 게 그의 문학 소산물입니다.

첫 작품집 '살아있음에 행복했네'(도서출판 서석)는 온몸으로 겪은 질곡의 한국 현대사가 고스란히 투영돼 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가는 집안에 대식구가 부대끼며 살아야 했던 성장기, 생사를 넘나드는 월남전 참전, 청렴한 공직 생활, 구순 노모 봉양, 퇴직 후 유유자적한 삶 등 한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첫 작품집 '살아있음에 행복했네' 표지. 사진 = 문수봉

이 가운데 월남전 참전 당시 한 여인과의 인연을 소재로 한 중편소설 '따이한의 눈물'은 전화 속에 꽃 피우지 못하고 사그라든 아픈 사랑을 눈에 보일 듯 애절하게 그려냈습니다.

또한 작가는 5·18 당시 도청과 금남로 일대에서 벌어진 참상을 기록한 '아∼슬픈 광주여'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증언했습니다.

이 밖에도 이 문집에는 서정시 30편과 구순 노모와의 훈훈한 모자의 정을 담고 있으며, 남미와 미국 여행기, 취미로 즐기는 골프 이야기, 30년간의 보람찬 공직 생활 등을 작가 특유의 담백한 화법으로 진솔하게 그려냈습니다.

소설가 문순태 씨는 발문에서 "베트남 참전의 체험을 중편소설로 형상화한 '따이한의 눈물'에 눈길이 갔다. 전쟁의 포화 속에 피어난 사랑 이야기는 눈물겹도록 아름답다"고 평했습니다.

소설 '삿갓배미사랑'에 수록된 작품 역시 친밀감 있게 읽힙니다.

우렁이각시 이야기를 각색한 소설로, 소시민의 삶 속에서 부딪히는 사건들을 작가의 관점에서 담담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노총각 '병철'이 가출한 여인과 달콤한 사랑을 나누다 헤어지는 줄거리인데, 해피엔딩이 아니어서 아쉬운 여운을 남깁니다.

함께 수록된 '그리움, 이슬로 머물고'는 초등학교 동창인 '수철'과 '정현'의 애틋한 재회 이야기로 불가에 귀의한 정현의 기구한 삶을 통해 인생무상을 화두로 던집니다.

◇ '슬픔으로 멍든 광주여' 5·18 목격담 증언

마지막 '슬픔으로 멍든 광주여'는 5·18 목격담을 토대로 광주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전하고 있으며, 특히 전두환이 광주시민에게 진정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를 촉구하는 작품입니다.

그는 서문에서 "나는 소설의 문학성보다는 인간 삶 속에 깃든 희로애락의 이야기를 일반 대중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통속적인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문학성보다는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를 가미해서 재미있게 써 보고자 했다"고 밝혔습니다.

▲문수봉 작가의 시는 솔향기와 같은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운 숨결이 담겨 있다. 집필실에서 바라본 명지산 전경. 사진 = 문수봉

두 번째 시집 '빗방울 꽃'(월간문학)에는 105편의 시가 수록돼 있습니다.

대부분 산중 생활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입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처럼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운 숨결이 담겨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맑게 정화시킵니다.

"명지산 등산길 / 외로이 서 있는 / 시비 하나 / 자연을 벗삼아 / 살고 있는 / 이름모를 / 시인의 마음이라네 / 바람이 불면 / 숲속을 헤매고 / 구름이 흘러가면 / 노래를 부르네 / 오늘도 / 명지산 자락에 / 시인은 외로움에 / 눈물 머금고 / 조용히 살아간다네" (시 '외로운 시비' 전문)

노창수 시인은 작품해설에서 "시편마다 온유한 인격미가 침윤되어 촉촉한 사물의 서정을 회감하고 있다. 그의 삶 또한 자연의 섭리를 좇아 무리하지 않은 여유도 즐긴다. 그러므로 시인은 가장 사람다운 깊고 따뜻한 정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했습니다.

한편, 문수봉 작가는 전남대를 졸업한 후 동신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한 설계감리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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