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기증받은 남편과 기증한 아내.."생명 나눠 보람"

작성 : 2024-09-16 08:52:33 수정 : 2024-09-18 13:20:52
▲'신장기증 30주년 생명나눔 기념패'를 받는 황인원 씨(왼쪽)[연합뉴스]
신장을 기증받아 새 삶을 산 남편과 신장을 기증해 생명 나눔을 실천한 아내의 사연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1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생존 시 신장 기증(살아있는 이가 신장 두 개 중 하나를 기증하는 것)인' 황인원 씨가 지난 9일 '장기기증의 날'을 맞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로부터 '신장 기증 30주년 기념패'를 받았습니다.

75살인 황 씨가 시신기증과 장기기증에 관심을 가진 건 꽤 오래전 일입니다.

황 씨는 경인교대 동기로 만난 고(故) 안희준 씨와 결혼한 후 장기기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1991년 황씨는 한 신문에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본부)를 통해 국내 최초로 생존 시 신장기증이 이뤄졌다는 기사를 읽은 뒤 곧장 본부 사무실을 찾아 장기기증을 등록했습니다.

본부에 등록된 이가 10명도 채 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같은 해 겨울방학 신장병을 앓던 남편은 교사 연수를 받던 중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AB형인 황 씨는 O형인 남편에게 신장을 이식해 줄 수 없었고 남편과 같은 혈액형인 황 씨 여동생이 나섰지만 조직 검사 결과가 맞질 않아 손쓸 도리가 없었습니다.

본부를 통해 신장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남편은 1993년 9월 기적적으로 수혜자 이윤자 씨를 만났습니다.

이 씨는 생면부지의 타인을 위해 기증에 나선 순수 기증인이었습니다.

신장 이식만이 답이었던 남편이 이 씨를 통해 새 삶을 선물 받은 것을 계기로 황 씨도 생명을 나눌 수 있는 수혜자를 적극 찾아 나섰습니다.

이듬해인 1994년 황 씨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에게 신장을 기증했습니다.

4년 넘게 혈액 투석을 받은 학생이었습니다.

황 씨는 "수술하면서도 걱정하거나 두려움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아이들도 아빠가 신장을 기증받았다 보니 말리지 않았다"고 떠올렸습니다.

"언젠가 제가 근무하던 초등학교에 그 학생이 대학생이 돼 엄마랑 같이 인사를 왔어요. 학생 엄마가 '덕분에 우리 아들이 이렇게 컸어요'라고 하더라고요. 훌쩍 크고 건강한 모습을 보니 기증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벌써 30년이 지나 그 학생도 40대가 됐을 텐데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신장을 기증받고 매일 운동하며 소중한 두 번째 삶을 이어가던 남편에게는 또다시 불행이 닥쳤습니다.

신장암과 임파선암에 이어 혈액암까지 걸린 남편은 2년의 투병 끝에 2010년 8월,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의 생전 뜻에 따라 황 씨는 남편의 시신을 상지대에 기증했습니다.

황 씨는 "남편은 기부, 후원에 앞장서고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방학도 없이 보냈다"며 "존경스러운 사람"이라고 추억했습니다.

황씨의 가족은 4대가 시신기증과 장기기증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2004년 세상을 떠나면서 시신을 기증한 시어머니에 이어 자녀와 중학생인 손자도 장기기증 등록을 마쳤습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한국의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는 지난해 말 기준 178만 3,284명(전 국민의 약 3.4%)으로 수년째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장기이식 대기 환자는 2013년 2만 6,036명에서 지난해 5만 1,876명으로 10년 만에 약 2배로 늘었습니다.

본부는 매일 7.9명의 환자가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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