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는 게 아니라 어째 점점 더 짙어지고 아파지는 것인지..나의 아이가 자랄수록 잃어버린 그 아이들이 너무 사무치네요" <세월호 팽목기억관 방명록 중>
벚꽃 잎이 흩날리고, 유채꽃이 일렁이는 길을 달리다 보면 저 멀리 보이는 빨간 등대 하나.
'기다림의 항구'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입니다.
세월호 10주기를 사흘 앞둔 지난 12일 오전, 팽목항에는 10년 전 그날을 기억하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드문드문 이어졌습니다.
예년에 비해 뜸해진 발걸음 탓일까, 팽목항 인근에는 적막마저 감돌았습니다.
색을 잃은 노란 리본들은 자취를 감췄고,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 터미널이 들어서며 팽목항은 진도항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날을 떠올리면 눈물부터 나는 추모객들의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대구에서 온 정창숙 씨는 "세월이 지나고, 제 일이 아니니까 조금 잊혀졌는데 여기 오니까 또 생각이 많이 난다"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부산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 김준원 군은 부모님 손을 잡고 팽목항을 찾았습니다.
'노란 리본을 끝까지 기억하겠다'고 적은 노란색 편지지를 등대 옆 우체통에 넣은 준원 군은 "어른이 될 때까지 기억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오는 길이 너무 아름다워 10년 전 그날도 이렇게 예뻤을까 생각했다는 최진영 씨.
최 씨는 세월의 흐름이 기억을 옅게 하기보단 오히려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벌써 10년이네라는 생각도 들고, 10년을 이렇게 매일 생각했으니 앞으로 20년, 30년 계속 생각할 수 있겠다"며 "시간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고 강조했습니다.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 이용객들 가운데 잠시 발길을 돌려 팽목항 일대를 걷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제주에서 배를 타고 친구들과 여행을 왔다는 송병선 씨는 목적지로 이동하기 전, 잠시 팽목항을 둘러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송 씨는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둘러보게 됐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0년을 매일같이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팽목성당' 지킴이 손인성·김영예 씨 부부.
처음엔 울부짖는 유가족이 눈에 밟혀 떠날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며 '아기들이 우리를 기다리겠다'는 마음에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며칠이면 끝날 줄 알았던 하루하루가 쌓여 10년이 됐습니다.
매일 한 시간 거리를 운전해 팽목성당 문을 여는 손 씨 부부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칠판에 세월호 참사 이후 날짜를 고쳐 적는 겁니다.
손 씨는 "그 날짜를 잊지 말자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적어왔다"며 "누군가 보고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김 씨는 "우리는 그때 상황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그런 마음은 똑같은데 잊혀져 가는 그런 기분이 든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부부가 매일 기도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런 사고가 안 났으면 좋겠다 그거지 뭐.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게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사고 없이, 누구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거죠"
기억의 힘을 믿고 10년의 세월을 켜켜이 쌓아온 사람들.
팽목항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앞으로 10년이 더 지나도 그날을 기억하는 마음은 바래지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기억은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기획 : KBC디지털뉴스팀 / 구성·취재 : 고우리·장창건 / 제작 : 장창건 / 내레이션 : 고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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