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탐·인]전통천연염색작가 한광석 장인(下)

작성 : 2023-05-09 16:50:59
“문화는 만든 사람 등휘고 누리는 사람 휘황찬란”
한창기 선생 영향 받아 '한국전통문화'에 관심
'쪽염색' 기록한 사진·염색 작품 함께 전시회 열어
5월10 ~ 30일 전남 보성군 폐교 갤러리 re
남도전통문화연구소, 전시·강연·공연 기획도
◇조상의 탁월한 지혜 담겨진 전통문화

▲한광석 장인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 (사)남도전통문화연구소 2층 갤러리re에서 전시된 자신의 전통천연염색 작품에 대해 설명하며 환히 웃고 있다.

▲천연염색을 주로 사용하는 용도?

=지금까지는 주로 옷을 해 입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사람들도 그러려고 사 가는 것 같습니다.
제 경험으로 무명에 물들여서 아토피로 고생하는 분의 방에 도배를 해 준 일도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의 폭을 넓히지 않고 서양식 삶이 더 좋다고 생각하여 자꾸 편리한 생활을 하려니까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어왔던 것을 무시해서 그렇지 생각을 조금만 깊이 해 보면 조상들의 생각이 얼마나 탁월한지 무릎을 치며 좋아할 것입니다.

▲천연염색천은 인간이 자연에서 찾아낸 가장 아름다운 색을 입힌 창조물로 귀한 옷감으로 주로 사용된다.

▲전통염색의 가치나 작품성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전통에 가깝게 물을 들일까? 어떤 색이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색일까? 수십 년 일을 하면서 혼자 고민한 문제입니다.

유월의 푸름을 유록이라 하는데 뭣일까? 팔월의 푸름은 팔유청이라 하는데 뭣일까? 두록은 초봄일까? 이런 의문과 고민이 시방까지 일을 하며 나를 묶어 놓은 이유일 것입니다.

▲작업과정을 항상 기록하는가?

=일하면서 실패를 반복하기 싫어서 일기를 쓰던 것이 습관이 되어 시방도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일에 대한 얘기는 쓰지 않고 누가 무슨 천을 얼마에 사갔다는 내용이 주된 내용입니다만, 요새는 그마저도 쓸 일이 거의 없습니다.

◇"세상에 좋은 일 하면서 살아가자"

▲한광석 장인이 기록해 둔 천연염색 사진들을 작품으로 완성해 갤러리re에서 자신의 천연염색작품과 함께 전시회를 연다.

▲이번에 개최하는 염색사진 전시회를 소개하면?

=‘한광석 전통염색 사진전’을 5월 10일부터 30일까지 보성군 문덕면 갤러리 re에서 엽니다. 그동안 물들이며 핸드폰으로 작업과정을 틈틈이 찍어 왔던 사진들 중에서 50여 장을 크게 뽑았습니다.

물론 천연염색 작품도 함께 선보입니다. 첫 날부터 먼저 오신 서른 분에게 45×60cm 정도의 사진작품을 한 장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많은 분들이 찾아오길 바랍니다.

돈 들여서 만든 일을 왜 그냥 남들에게 주려고 하느냐는 말도 듣지만, 오랫동안 물들여서 먹고 살았는데 세월이 흐르니 나도 늙어 가고 세상에 좋은 일이나 하면서 살아가자고 마음먹고 실행하는 것이니 너무 의심 마시고 오셔서 편히 즐기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 것 소중함 깨닫고 되새기는 '전통염색'

▲이번 전시회에는 한광석 장인의 염색천 작품은 물론 사진 50여 점과 염색의 재료인 모시옷감과 목화솜 등이 함께 선보인다.

▲천연염색처럼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전통문화’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사실 한창기 선생의 영향을 받았다고 봅니다. 사실 1970~80년대 종합 월간잡지 ‘뿌리깊은나무’와 여성 종합 문화지 ‘샘이깊은물’을 창간한 한창기(1936~1997년) 선생이 집안 어른입니다.

1979년부터 3년 남짓 한 선생의 일을 도왔는데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도자기공, 옹기장, 목수, 부채 만드는 사람, 전통식물 씨앗 보존가 등을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전통 천연염색도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우리 것의 소중함을 깨닫고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 선생의 이 ‘깊은 생각’을 알아차리고 쪽물염색에 뛰어들었습니다.

▲한광석 장인이 남도전통문화연구소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지역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을 위해 재현한 작업으로 탄생한 ‘옻칠 달항아리’도 전시된다.

▲전통 천연염색을 산업화하려는데 과제나 문제점은?

=전통에 관련된 일을 제대로 보지 않고 관광산업으로 발전시키려는 의뭉한 의도 때문에 실행하는 곳마다 그 의뭉에 역습을 당해서 전통에서 찾은 콘텐츠가 아주 형편없는 헌신짝이 돼 버리고 마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예전이나 시방이나 다 생각이 깊지 않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누구를 위하네 하면서 속으로는 자기들 잇속을 챙기기에 바빠서 그럽니다.

다른 나라는 어떻다더라 하고 한번 가서 겉만 훑고 와서 그것이 제일이고 자기 생각이 일반인보다 앞서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는 어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돈 축내고 정말 아까운 시간 버리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안타깝습니다.

◇더 좋은 문화로 사람 사는 것 아름답게

▲(사)남도전통문화연구소는 폐교사에 갤러리와 작업장, 연구소를 차려 농촌지역 문화예술 활성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사진은 연구소 입구와 내부 계단의 모습.

▲(사)남도전통문화연구소 운영을 맡아 오셨는데 그동안 어떤 일을 했는가?

=사단법인 남도전통문화연구소는 우리 지역의 전통문화를 더 좋은 문화로 만들어 사람들 사는 것을 아름답게 만들어 보자는 거창한 목표로 만든 비영리 문화재단입니다.

문화계 사람들 모시고 얘기 듣는 일, 지역 도예가의 도자기 전시를 20여 회 정도했고, 재주꾼들을 불러 공연도 20여 회 했습니다.

특히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윤구병 우리말 연구회장, 이태호 전 전남대학교교수, 김형윤 전 뿌리깊은나무 편집장 초청강연을 했습니다.

또 무형문화재 경기도살풀이 김운선, 가곡 문화재 전수자 강권순, 무성서원에서 듣는 정마리 초청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남도전통문화연구소 곳곳에 한광석 장인의 전통문화 살리기 의지가 엿보이는 명패와 안내판,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지역문화와 관련 하고 싶은 말은?

=문화는 하루 아침에 이룰 수도 없고 이뤄지지도 않는 겁니다. 장사가 잘 돼서 돈 좀 벌어 부자 되었다고 문화가 성숙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라고 문화인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지금 세계 속의 우리나라가 꼭 그 위치에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백년쯤 더 흘러 스스로의 마음에 차분히 가라앉은 문화라는 것이 있을 때 우리도 문화니 예술이니 하는 말을 편하게 쓰면서 살아가겠지요. 그런 날이 올 때 까지 열심히 살아가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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