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 산천 곳곳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화사하고 몽환적인 꽃무리를 감상하기 위해 벚꽃 군락지를 찾는 상춘객들의 발걸음이 가볍기만 합니다.
광주 시내 벚꽃 명소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 바로 광산구 소촌동 금봉산 자락에 자리한 송정공원입니다. 매년 3월 하순 무렵이면 송정공원 일대에는 수 십 그루 고목들이 피워낸 벚꽃 행렬이 눈부시게 환합니다.
그 화사한 꽃등이 각박한 도시생활에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어머니의 손길처럼 보드랍게 어루만져주는 듯합니다.
◇하나의 공간에 두 개의 역사적 층위
그런데 송정공원은 하나의 공간에 두 개의 역사적 층위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일제 잔재이고, 또 하나는 항일의 횃불인데 이들이 한 장소에서 서로 말없이 조응하고 있습니다. 송정공원은 광주공원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근대 도시공원으로서 그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일제는 공원 가장 명당자리에 신사를 짓고 주변에는 벚나무를 심어 놓았습니다. 송정공원 신사는 1922년 신명신사로 최초 건립되었으며, 일본 기원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추앙했다고 합니다. 1940년 송정신사로 개명되었고 이듬해 4월 17일 새롭게 단장되었습니다.
신사 건물 가운데 신전과 신찬소(제단 음식을 준비하는 공간)는 헐리고 배전건물(일반신도가 참배하는 공간)이 현재 대한조계종 산하 금선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금선사 건물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목조 신사로 알려졌습니다.
공원 안에는 신사뿐 아니라 일본군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충혼비를 비롯 석등, 돌계단, 석축 등 일제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광주시는 지난 2020년 옛 신사건물 앞에 단죄비를 세워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 있습니다.
◇정반대의 역사인식이 충돌하는 시국.. 혼미한 계절
그러나 송정공원에는 어두운 시대의 그림자만 드리워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원 안에는 의병대장 금제 이기손(1879~1957) 장군의 의적비가 세워져 순국선열의 항일정신이 횃불처럼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기손 장군은 광산을 대표하는 의병장으로 용진산 전투와 함께 호남 곳곳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으며, 강제병합 이후 러시아로 망명하여 항일 운동을 전개한 인물입니다.
이와 함께 송정공원에는 국창 임방울(1904~1961) 선생의 기념비, 용아 박용철 시인의 시비가 건립되어 송정공원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애국혼을 일깨워 줍니다. 임방울은 식민지 시절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과 한을 판소리로 대변했으며, ‘쑥대머리’ 음반은 100만 장이나 팔렸습니다.
1985년에 세워진 용아 박용철(1904~1938) 시인의 시비는 동판으로 제작된 그의 초상과 함께 대표작 ‘떠나가는 배’가 새겨져 있습니다. 용아는 일제강점기 한국 현대문학 개척자의 한 사람으로 김영랑, 정지용과 더불어 순수시 경향의 시문학파를 결성해 억눌린 우리 민족의 정서를 고양시켜 자긍심을 높였습니다. 1996년 ‘문학의해’를 맞아 용아의 시 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이곳에 들러 취재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리고 송정공원에는 노동운동의 선구적 인물들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역사적 의미를 더 해줍니다. 필자는 송정공원 벚꽃을 볼 때마다 2개의 결이 다른 봄을 느낍니다. ‘벚꽃과 사꾸라’. 일본을 상징하는 꽃으로서 ‘사꾸라’는 반일감정과 맞물려 부정적 이미지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정치권에서는 변절한 정치인을 ‘사꾸라’로 부르기도 했으며, 세간에서는 ‘가짜’를 속어적으로 ‘사꾸라’라 칭했습니다.
송정공원이라는 공간에 두 개의 역사적 층위가 존재하듯 현재 우리나라 시국도 정반대의 역사인식이 충돌하는 모양새입니다. 어떤 꽃은 ‘벚꽃’이 되고, 어떤 꽃은 ‘사꾸라’가 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는 혼미한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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