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백수인 명예교수 "솔바람은 내게 '시'를 데려다줬습니다"(2편)

작성 : 2024-03-31 09:00:04 수정 : 2024-05-31 13:34:00
2003년 '시와시학' 등단, 늦게 이룬 시인의 꿈
젊은 시절 저항시 추구, 중년에 서정시로 회귀
조선족 문학과 교류, 중국으로 교세 확장 앞장
[남·별·이]백수인 명예교수 "솔바람은 내게 '시'를 데려다줬습니다"(2편)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필자와 인터뷰 중 시집을 들고 포즈를 취한 백수인 교수. 사진 : 필자

백 교수는 1970년대 후반 대학 재학 시절, 저항시를 주로 썼습니다.

당시 군부 독재의 억압 속에서 지식인들의 의식적 활동은 '반(反)독재'에 겨눠졌습니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문학의 지향점 역시 동일한 선상에 있었습니다.

특히 조선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반미·반독재 저항시를 썼던 문병란 시인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시적 주제는 사회적 모순, 불의에 대한 고발과 응징, 노동자·농민 옹호, 민족통일 염원 등이 주된 대상이었습니다.

◇ 80년대 평론으로 등단, 시작(詩作)보다 평론에 치중

하지만 졸업 후 정작 모교 교수가 되어서는 시작(詩作)보다는 평론에 치중했습니다.

문체론, 현대시론, 현대문학사, 현대문학강독 등 주로 시와 관련된 과목이었지만 논문을 써야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시 창작보다는 평론 활동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80년대 평론으로 등단해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동안 발표한 평론 및 저술로는 '현대시와 지역문학', '소통과 상황의 시학', '장흥의 가사문학', '기봉 백광홍의 생애와 문학', '대학문학의 역사와 의미'가 있습니다.

▲1974년 휴교령이 내린 가운데 장흥에 찾아온 스승 문병란 교수와 함께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사진 : 본인 제공

시인으로서 문단에 나온 것은 50살이던 2003년 '시와시학' 추천을 통해서였습니다.

백 교수는 "중년이 다 되어서야 아버지의 바람이었던 시인이 됐습니다"라며 멋쩍게 웃었습니다.

아울러 이 무렵 그의 시 경향은 젊은 시절 썼던 참여시와 달리 서정시로 바뀌었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시 세계는 '마음을 움직이는 시'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시는 마음의 표현이자 전달 수단입니다. 자연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사랑의 마음을 형상화하는 것이 바로 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백 교수는 말했습니다.

하늘 향해
온 세상 휘감고 오르고 또 오르다
잠깐 뒤돌아보네

무엇이 그리 좋은지 깔깔대며 웃고 있네

보랏빛 웃음소리
천지에 흩어지네

<등나무꽃> '더글러스 퍼 널빤지에게', 2021

짧은 몇 줄의 시이지만 여기에는 삶의 해학과 여유가 깃들어 있습니다.

등나무는 넝쿨식물로 하늘을 향해 온몸을 비틀며 뻗어가는 모습이 마치 힘들게 세파를 헤쳐나가는 민중의 삶을 연상케 합니다.

그 와중에 잠깐 뒤를 돌아보며 깔깔대며 보랏빛 웃음을 쏟아내는 호탕함이 독자에게 한여름 소나기처럼 통쾌함을 안겨줍니다.

시집으로는 '바람을 전송하다'(2016, 시와사람), '더글러스 퍼 널빤지에게'(2021, 푸른사상)가 있습니다.

▲수많은 문학서적으로 빼곡히 채워진 장흥 고향집 서재. 사진 : 본인 제공

◇ 광동외어외무대학에서 1년간 연구교수

백 교수는 1990년대 중후반에 들어 중국 대학과의 교류가 활발한 상황에서 인문과학연구소 간사를 맡아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조선족 출신 연변 문인협회 부주석이 광주를 방문했을 때, 조선족문학에 대해 강의기회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이어 연변대 조선어문과와 자매결연을 맺어 학생교류와 조선족문학상 제정 및 후원 등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특히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 조선족 유학생을 유치해 교세 확장에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유학생들은 졸업 후 중국에 돌아가 요직에서 활약하는 한편 '재중국조선대동창회'를 결성해 이른바 '파워그룹'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조선족이 주관하는 중국국제학술대회 '두만강포럼'에 초청받아 학술교류에 참여했습니다.

또한 광저우 소재 광동외어외무대학에 1년간 한국어과 연구교수로 파견되기도 했습니다.

▲2021년 용아생가에서 '시인의 사계'를 주제로 강연하는 장면. 사진 : 본인 제공

◇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이사장 역임

한편, 백 교수는 문화연구단체인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에 참여해 이사, 운영위원장을 거쳐 이사장까지 오랜 기간 시민사회단체 활동에 몸담았습니다.

1970년대 후반 시민운동가 김상윤 씨가 운영하는 '녹두서점' 회원으로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유년 시절 나를 감싸던 솔바람은 나에게 '시'를 데려다주었고, 나는 그와 함께 한 생을 살았다"고 시집 서문에 고백한 것처럼, 백 교수는 오늘도 사자산 아래 고향집에서 시상에 잠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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