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고려인마을 작은도서관장 한석훈 "손주 같은 아이들과 친구처럼..행복합니다"

작성 : 2024-06-01 09:00:03
10년 전 다문화가정 어린이들 위해 문 열어
장서 5천 권..책 읽어주며 한국문화 심어줘
매달 독서모임 개최, 동네사랑방 역할 톡톡
[남·별·이]고려인마을 작은도서관장 한석훈 "손주 같은 아이들과 친구처럼..행복합니다"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우제작은도서관 서가에서 책을 펼쳐보고 있는 한석훈 씨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에는 '호남의 유라시아'라 불리는 고려인 마을이 있습니다.

20여 년 전 일자리를 찾아 광주로 온 고려인들이 하나, 둘 정착하기 시작해 지금은 7천명 가량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기 안산, 인천 연수구, 경북 경주에 이어 전국에서 네 번째로 고려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꼽힙니다.

이 곳에는 고려인뿐 아니라 동남아에서 이주해 온 외국인들도 다수 거주하고 있습니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쉽게 외국인을 만날 수 있고 낯선 언어로 쓰인 간판이 즐비해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집니다.

월곡동 골목 한편 3층 건물 지하에는 우제작은도서관이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 새마을운동중앙회 연수원 교수로 정년 퇴임

이 건물 주인인 76살 한석훈 씨가 2013년 갈 곳 없는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을 위해 문을 열었습니다.

중등교사로 생활하다가 새마을운동중앙회 연수원 교수로 정년 퇴임한 한 씨가 노후에 보람 있는 일을 찾다가 시작한 일입니다.

100㎡(30평) 남짓한 공간에는 그림책 등 어린이 도서를 비롯 문학·교양, 전문서적에 이르기까지 장서 5천 권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에 위치한 우제작은도서관 건물

우제작은도서관은 주민들도 이용하지만 주로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 2층에 방과후 공부를 지도하는 지역아동센터가 입주해 있어 30명의 아이들이 내려와 자유롭게 책을 읽고 여가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당초 지하 공간은 당구장과 교회로 사용돼 임대료 수입을 안겨준 곳이었습니다.

가까이에 행정복지센터와 치안센터가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매력적인 상권이었습니다.
◇ 문학과 인생을 토론하는 '책사랑' 독서모임

그러나 이들 기관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면서 한적한 골목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한 씨는 고민 끝에 이 공간에 아동센터와 작은도서관을 꾸며 사람의 온기를 채워 넣기로 했습니다.

또한 평생동안 가르치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교육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에 봉사하고자 한 것입니다.

▲장서 5천 권이 소장된 우제작은도서관 내부 전경

현재 도서관은 광산구청의 지원으로 책 정리와 청소를 담당하는 시니어일꾼이 도움을 주고 있어 수월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손주처럼 여기며 책을 읽어주고 때로는 친구가 되어 놀아주기도 합니다.

한 씨는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은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고립되어 생활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책을 통해 한글을 배우게 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책사랑' 독서모임 회원들이 우제작은도서관에서 토론하는 모습

한 씨는 3년 전부터 인근 주민을 중심으로 '책사랑' 독서모임을 만들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문학과 인생을 토론하는 담론의 장으로 매월 한 차례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코로나 기간에 중단했다가 올해 초부터 다시 모임을 재개해 세 번째 진행했습니다.

지난 23일 모임에는 11명 회원 가운데 6명이 참석해 나태주 시인과 김용택 시인의 작품을 감상하며 토론을 나눴습니다.
◇ '대한세계' 시 등단, 올해 첫 시집 낼 계획

이날 참석한 회원들은 50대 후반에서 70대 중반까지 다양하며 대부분 문학을 취미로 삼고 있습니다.

76살 박진성 씨는 교육청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후 광주 근교에서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박 씨는 중학교 때부터 써온 일기를 바탕으로 자서전을 써볼 생각입니다.

어린이집 원감으로 정년퇴직한 64살 이안숙 씨는 시인을 꿈꾸며 꾸준히 시 습작을 해오고 있습니다.

▲공연장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한석훈 씨

콜센터 상담사인 정인순 씨 역시 시집 읽기를 좋아하며 중학교 때 외웠던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지금도 암송할 정도입니다.

가정주부 62살 한향정 씨, 시니어 일꾼 66살 최선재 씨도 시인 지망생입니다.

한 씨 역시 '대한세계'에 시로 등단한 시인이며, 시낭송가로서 문학의 향기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올해 첫 시집을 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색소폰 연주자로서 시민들에게 흥겨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한 씨는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며 노년에 할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특히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즐겁고 보람차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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