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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95 주년 3*1절입니다.
기미년 당시 광주전남 곳곳에서는 만세운동을 벌이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들의 행적이 담겨있는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주일대사관 지하에서 수십 년간 보관돼 있던 3*1운동 피살자 명부가 최근 공개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정경원 기자의 보도입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유일한 전남 출신인 지강 양한묵 선생.
독립선언문 발표 직후 서대문 형무소에 끌려가 갖은 고문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옥에서 순국했습니다.
전화인터뷰-임영희/ 양한묵 선생 외증손녀
"얼핏얼핏 들은 게 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 정도밖에... 책은 한 권 발간돼 가지고 그런 건 있는데..."
이처럼 양한묵 선생은 많은 기록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은 사정이 다릅니다.
정확한 순국 일시나 장소 기록 등이 남아있지 않기 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난해 6월 주일대사관에서 발견된 3*1 독립운동 피살자 명부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광주전남 출신은 29명, 목격자 등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된 기록이라 정확도가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당시 상황을 가늠해 보기에는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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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자 연령대를 보면 20대와 30대가 각각 10명과 11명으로 대부분이었고, 고령의 60대도 한 명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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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장소로 볼 때 독립운동 현장에서 사살된 수가 14명으로 가장 많았고 서대문과 목포, 광주 등의 형무소 안이 7명이었습니다.
인터뷰-김갑제/ 광복회 광주전남연합지부 지부장
"수많은 자료들이 어디에선가 잠자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래서 그것을 체계적으로 지금이라도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서 국가가 찾아야 한다"
3*1운동 95주년을 맞도록 나라를 되찾고자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
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억하고 후손에게 소중한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서는 정부가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kbc 정경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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