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구하려는 방음벽 스티커..새 잡는 '트랩' 원인 지목
맹금류 스티커 말고 다른 방법 있을까..올바른 저감조치는?
맹금류 스티커 말고 다른 방법 있을까..올바른 저감조치는?
소음을 막는 아파트 방음벽 곳곳에 붙은 검은 새 모양의 스티커.
다들 지나가다 한 번씩은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보통 독수리나 매 등 맹금류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요.
새들로 하여금 천적인 맹금류를 피해 날아가도록 해, 충돌을 막을 목적으로 설치됐습니다.
하지만, 새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이 맹금류 스티커가 오히려 새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은 우리 핑거이슈 팀이 정확한 사실 파악을 위해 동물권 단체 '성난비건'의 활동가 희복 씨와 함께 현장을 둘러봤습니다.
△아파트 단지 방음벽 곳곳..새 사체 '무수'
광주광역시의 한 아파트 단지.
깔끔하게 조성된 단지 외곽을 둘러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멧비둘기의 사체가 발견됐습니다.
잿빛 몸통에 날개엔 물결무늬가 새겨진 새죠.
흔히들 산비둘기라고도 부르는, 야산이나 야트막한 구릉에서 자주 목격되는 우리나라의 텃새입니다.
활동가 희복 씨에 따르면 지난해, 이 멧비둘기의 충돌량이 가장 많았던 곳이 광주 지역으로 집계됐다고 합니다.
쉽게 볼 수 없는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 철새들도 방음벽에 충돌하는 것을 피해갈 수 없는 건 마찬가지죠.
"팔색조, 솔부엉이, 황조롱이 같은 천연기념물도 충돌했었고요. 광주광역시에서 지정한 보호종 중 5종에 해당하는 새들이 똑같이 방음벽에 충돌해서 사망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새들의 사체는 계속해서 맹금류 스티커가 부착된 방음벽 아래서 발견됐습니다.
"맹금류 스티커는 사실상 조류 충돌을 저감하는 효과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맹금류 스티커가 부착된 부분을 통과할 수 없다고 여겨서 그 부분이 아닌 나머지 다른 부분 주변에 있는 투명한 부분으로 날아가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스티거를 조금만 피해서 주변으로 날아가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겠다는 착각을 새들에게 불러일으킨다고 합니다.
활동가 희복 씨가 소속된 동물권 단체 '성난비건'은 이같은 조류 충돌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있는지 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꾸준히 조사를 실시해 왔습니다.
현재 광주에서 투명방음벽이 설치된 아파트는 모두 180곳.
지난해, 광주에서만 모두 62종 2,626마리에 달하는 새들이 충돌 피해를 입고 죽거나 다쳤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안타까운 사고를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요?
△어렵지 않은 대안, 저감조치 테이프 시공
의외로 해결책은 간단했습니다.
기존의 투명방음벽에 일정한 간격(위아래 5cm, 좌우 10cm)을 유지한 채 점 모양의 무늬만 넣어주면 된다고 하네요.
테이프나 필름지를 사용해 일정한 규칙이 적용된 저감조치 테이프를 시공하면 조류 충돌 방지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이같은 무늬가 새들로 하여금 그 사이를 통과할 수 없다고 여기게 해, 이를 피해 돌아가도록 만들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의문이 드네요.
왜 애초에 방음벽을 설치할 때부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걸까요?
그 답은 허술한 규제에 있었습니다.
조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특수한 방음 패널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지난 2021년 4월 제정됐지만, 페널티가 없어서 시행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아파트의 전체적인 조화를 핑계로 저감조치를 멋대로 시행해 최악의 결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고 하는데요.
바로 옆 아파트 단지에서 그 예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잘못된 저감조치 방음벽
이 아파트의 투명방음벽은 곳곳에 저감조치가 된 패널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사용하지 않고 군데군데 띄어서 사용했습니다.
아마도 디자인적 요소를 살리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네요.
하지만 이같은 애매한 조치는 하나마나한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저감조치가 들어가 있는 방음 패널로 날아가던 새들이 "여긴 못 가겠네" 라면서 바로 밑의 투명 패널로 들어가려 하다 부딪히는 거죠.
실제로 해당 방음벽 아래에는 죽은 새의 사체가 다수 발견됐습니다.
방음벽의 투명한 유리창 부분엔 새가 와서 부딪힌 자국, 일명 '충돌흔'이 선명했습니다.
"위에서 두 번째 칸과 네 번째 칸에 지금 남아 있는 게 충돌흔이에요. 새들의 깃털에 남아 있는 비듬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이제 유리 표면에 묻는 건데, 사람들이 유리창을 만졌을 때 손가락 지문이 남는 것처럼 새의 유분기가 먼지랑 같이 붙어서 남는 흔적입니다."
그렇게 핑거이슈 팀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아파트 두 곳을 돌았습니다.
상태가 온전한 새 시체만을 세 본 결과, 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새는 모두 8마리로 집계됐습니다.
"법률로 법제화가 돼 있더라도 민간 건축물에 대한 저감조치가 필수적으로 권고 또는 의무가 되지 않는 이상, 조류 충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국에 있는 시민분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는 게 제일 필요하고요."
희복 씨는 길을 지나다 건물 또는 아파트 단지 방음벽 근처에서 유리에 부딪혀 정신을 잃거나 죽어가고 있는 새들을 발견한다면 이를 촬영해 자연관찰 플랫폼 네이처링에 등록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네이처링의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 미션에 기록하면 해당 건물과 방음벽에서 얼마나 많은 새들이 사고를 당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동물권 단체들은 그 데이터를 근거로 시청과 구청에 저감조치 실시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할 수 있다고 하네요.
더는 이런 안타까운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꼭 기억해서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조그만 노력만 기울여도 수많은 생명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방음벽이 새들의 무덤이 되지 않도록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핑거이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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