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조의 절제와 율격이 돋보이는 작품 수록
저녁 내내 창문을
누군가 두드린다
밤이 더 깊을수록
어머니가 생각나
무릎이
바스러진 생,
절며 가는
빗줄기
- 저녁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 한구석이 먹먹하기만 합니다.
좋았던 시간도 많은데 불쑥 내 마음속을 차오르는 것은 애달픈 기억들 뿐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여행 중에 만난 저녁비마저도 어머니의 인생처럼 다리를 절며 간다는 시인의 노래가 가슴을 후벼 팝니다.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쳐온 중견 시조시인 박현덕 시인이 최근 10번째 시조집 '와온에 와 너를 만난다'(문학들시선 67)를 펴냈습니다.
이 시집은 전남 진도와 목포, 여수 등 남도 곳곳을 떠돌며 그때그때 현장에서 느끼고 토하듯 쓴 시 60편을 모두 3부로 나누어 실었습니다.
박 시인은 중앙시조대상, 김만중문학상, 송순문학상 등 굵직한 국내 문학상을 수상한 이력답게 시조로써의 절제와 율격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 소외된 삶의 현장에 투철한 사회의식 투영
이번 시집이 이전의 것과 다른 점은 시인의 시선이 바깥이 아니라 내면을 지향한다는 점이라고 하는 문단 안팎의 평가입니다.
박 시인은 그동안 소외된 삶의 현장을 중심으로 투철한 사회의식을 투영하여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집에서는 바깥의 풍경을 매개로 내면의 상처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일 망했다고 무작정 차를 몰아
와온해변 민박집에 마음 내려 놓는다
나는 왜 춥게 지내며 덜컹덜컹 거렸지
- 노을(와온에 와 너를 만난다1)
그의 시에서 바다는 그 "상처가 터져 걸어온 길"을 적시고 하늘은 "미친 바람처럼 물고 또 뜯고 있다"고 하듯 여행으로 낳은 시편이지만 그것은 상처 깊은 시인의 내면 풍경으로 읽혀집니다.
고재종 시인은 "박현덕의 이번 시편들은 남도의 곳곳과 자연 만유에 마음의 발자국이 찍힌다"면서 "그 마음은 외로움, 그리움, 슬픔, 아픔, 쓸쓸함, 절망, 기억, 눈물, 적막 등등의 상처인 바, 그 상처에 의해 풍경은 재구성된다"고 평가했습니다.
◇ 시조문학상·신춘문예로 등단한 중견 시인
박현덕 시인은 1967년 전남 완도 출생으로 광주대학교 문창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박현덕 시인은 1987년 '시조문학'에 추천이 완료되고, 1988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조 부문과 1993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중앙시조대상, 김만중문학상, 백수문학상, 송순문학상, 오늘의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시집으로 '겨울 삽화', '밤길', '주암댐 수몰지구를 지나며', '스쿠터 언니', '1번 국도', '겨울 등광리', '야사리 은행나무', '대숲에 들다', '밤 군산항'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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