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 맞은 백수인 시인 『겨울 언덕의 백양나무숲』 시집 출간

작성 : 2024-12-02 08:54:45 수정 : 2024-12-02 09:10:08
우주와 합일 꿈꾸는 유장한 시 세계
고향의 풍경을 결 고은 언어로 노래
이대흠 시인 "귀로 보는 풍경의 깊이"
고희 맞은 백수인 시인 『겨울 언덕의 백양나무숲』 시집 출간

▲백수인 시인과 그의 시집 『겨울 언덕의 백양나무숲』

대학에서 정년퇴직 후 고향 전남 장흥에 내려와 안거하고 있는 백수인 시인이 세 번째 시집 『겨울 언덕의 백양나무숲』(문학들 刊)을 출간했습니다.

올해 고희를 맞아 상재한 이번 시집은 표제 제목처럼 유년시절 추억이 어린 고향의 풍경을 결 고은 언어로 정감있게 빚어냈습니다.

내가 물이 되면 "당신은 나를 마시고" 당신이 바람이 되면 나는 "당신을 호흡하고"(물과 바람).

강의 숨결과 흙내음이 물씬 묻어나는 시를 읽다 보면 시인의 영혼이 우주와 한 몸이 되는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강의 숨결과 흙내음이 물씬
물과 바람이라는 시 속에서 화자는 "나는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이미 물이 되었지요", "내 몸속은 지금 향기로운 당신의 꽃바람으로 가득해요"라고 노래합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삶, 바로 지금의 물과 바람 속에서 시인은 몰아지경이 됩니다.

또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모든 것이 불분명한 혼돈의 바다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바다는 온통 혼돈의 빛깔이었죠" 경계가 모호하고 밝은 빛은 허물어지고 "뜻을 잃은 언어들만 굳세게 일어나"는 인생의 뒤안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시인은 깨닫게 됩니다.

"중저음 뱃고동 소리가 울리며 검은 배 한 척이 느릿느릿 내 가슴속으로 들어오고 있었어요 그게 안개를 걷어내는 한 줄기 빛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지요"(안개 바다)
◇ 오랜 연륜으로 다져진 문장
오랜 연륜으로 다져진 문장에는 미사여구도 거추장스럽습니다.

수백 년 묵은 종가에서 우거진 풀을 매다가 무수한 뼈들을 발견한 시인은 "어떤 뼈에는 포악한 탐욕의 이빨 자국이 찍혀 있고 어떤 뼈에는 매미 우는 소리, 귀뚜라미 소리, 새들 지저귀는 소리들이 화석으로 고여 있다", "시간은 수많은 바람과 소리와 그림자들과 함께 지나가 버렸지만 그 단단함은 뼈의 모습으로 땅속에 고스란히 묻혀 있었구나"(시간의 뼈)라고 증언합니다.

간결한 언어로 빚는 명징한 이미지에 깊은 의미의 파장이 일어납니다.

때죽나무가 있는 골짜기를 흐르는 물은 "작은 종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하얀 종소리"가 되고 그 종소리로 물고기들은 열반에 들고 시인도 그들과 하나가 됩니다.

"그 종소리들이 물에 녹아 흐르면 먼 강에서 수많은 물고기들이 잠깐 기절하듯 잠 속에 빠진다네요 그때 물고기들이 열반의 경지에 이른다네요 내 몸속으로 스멀스멀 들어오는 종소리들이 나를 넓적한 바위 위에 앉히고 가부좌를 틀게 하네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숨을 쉬네요"(때죽나무)

고희에 이르러 시인은 이제 인생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제 비로소 밀물은 스스로 썰물이 된다", "썰물 모든 욕망 다 버리고 돌아서는 뒷모습이다"(밀물과 썰물)
◇ 더욱 넓고 깊어진 시적 사유
저자와 동향인 이대흠 시인은 시집 해설에서 "귀로 보는 풍경의 깊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백수인의 이번 시집은 물의 이미지가 많고, 청각적 심상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것은 시인의 사유가 깊어진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음의 눈이 밖으로 향하면, 풍경이 보일 것이고, 마음의 눈이 안으로 향하면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이제 사람의 말만이 아니라, 다른 대상들의 말을 '듣기' 시작한 그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바다처럼 큰 귀로 받아들일 세계가 자못 궁금하다. 우주의 신음을 듣기 시작한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이다"라고.

백수인 시인은 1954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시와시학』에 추천되어 시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조선대 국어교육과에서 정년퇴임했으며 시집으로 『바람을 전송하다』, 『더글러스 퍼 널빤지에게』가 있습니다.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

많이 본 기사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