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우 시인 『멀어지는 것들은…』.."삶의 격랑 속 탈향한 넋들에 대한 비장한 서사"

작성 : 2024-12-13 09:17:11
현대인들의 내면 '불안과 상처' 투영
본래적인 힘으로써 고독이 지배
전남 진도 출신, 고교 국어교사로 퇴직
▲ 박현우 시인(왼쪽)과 시집『멀어지는 것들은 늘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박현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멀어지는 것들은 늘 가까운 곳에 있었다』(문학들)가 출간됐습니다.

전라남도 진도에서 출생한 박 시인은 조선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오랜 기간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1989년 『풀빛도 물빛도 하나로 만나』(부부시집)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첫 시집 『달이 따라오더니 내 등을 두드리곤 했다』를 펴냈습니다.

30여 년 등단 연륜에 비춰볼 때 이번 두 번째 시집이 오랜 면벽수행 끝에 잉태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시편마다 단단하고 투명한 정신의 결정(結晶)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또한 삶의 격랑 속에 마주한 아픔들을 승화한 비장한 서사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두 번째 시집에 주목하는 것은 '모난 돌'들의 삶에서 그가 발견해 내는 '고독'의 참 의미 때문입니다.
◇ 사회 속 '모난 돌'들의 외침
시인은 어느 날 완도 정도리 갯돌을 밟으며 모난 돌과 몽돌의 의미를 사색합니다.

그는 무수히 부서지길 반복했을 파도와 물빛 속에서 표면적으로 모난 데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눈앞의 몽돌들을 보며, 저마다의 '모'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사르며 모질도록 저항하고 거부했을 원래의 '모난 돌'들을 상상합니다.

그러면서 비록 겉으로 어떤 '모'도 없이 원만한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 몽돌들이 숨기고 있는 '불안과 상처'를 읽어 냅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
가슴에 묻고 산 지 오래
완도 정도리 갯돌 밟으며 걷노라니
시시로 변하는 물빛 부서지길 몇 번

거품이 거품을 지우며 소스라치는
무변의 생존 곁에서 자신을 사르며
모질도록 저항했을 불안과
상처를 숨긴 낯빛 끝내 발하는
사계의 해조음처럼

변덕스런 시공을 살아 볼 일이지만
물살 따라간 시간들 뒤돌아보면
절도(絶島)를 표류하던 절명의 고독들이

더러는 깨어져 백사(白沙)가 되고
갯것들 사늑한 보금자리 되는
모난 돌 하나 찾기 힘든 구계등 바라
모나게 살고 싶던 날들의 신념 꺼내 보는가

오는 길 정 맞은 돌 몇 주워
빈틈 많은 생의 구멍을 메워 볼까
하는.

- 모난 돌

박현우에게 '고독'은 한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쓸쓸함이나 외로움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또한 사회적인 단절이나 인간관계의 고립에서 오는 자기 소외와 자기 방기의 감정의 하나가 아닙니다.

오히려 타인의 관심이나 눈치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 자신의 존재를 더욱 뚜렷이 하는 것을 뜻합니다.
◇ '나'와 대면하는 '의로운 고독'
그러면서 그 고독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기 바쁜 현대사회를 대처하는 '수 세월 대를 이어 군락을 이룬 쥐똥나무'와 같은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인 사회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면서, 마침내 의로운 고독을 지향합니다.

재침해 패주하던 자들이 수장당한 울돌목
몇 수레의 역사를 이고 진
그 독한 저항을
몸으로 체득한 죽음 따위가 대수랴
웅혼한 대륙의 기질과
익숙한 삶의 바다가 주는
매서운 시련을 이겨낸 보배 섬
할거(割據)만 아는 군웅(群雄)은
의로운 고독을 모르지
휘몰이로 용솟는 명량 바다
진퇴를 모르는 공방 끝에
갯가에 떠오른 이방인들의 얼굴
코를 잘라 전리품쯤으로 아는 야만을
놀 따라 흔들리던
너희들 주검은 모를 거야

- 왜덕산

이 시는 단지 수많은 외침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한 고향 진도와 진도인의 웅혼한 기질을 노래한 향토 찬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죽음을 불사한 진도인의 영웅적인 투쟁이나 무용담이 아닌, 전쟁에서 진퇴를 모르는 공방 끝에 패주해 진도 울돌목에 수장당했다가 갯가에 떠오른 이방인들의 주검에 대한 진도인들의 지극한 삶의 태도입니다.

진도군 고군면 내동을 비롯 마산 황조 하율 등을 가리지 않고 뒤엉킨 채로 흘러들어온 탈향한 넋들에 대한 '보배섬' 사람들의 숭고하고 오랜 전통의 인지상정입니다.

임동확 시인은 추천사에서 "박현우 시인의 이번 시집을 지배하는 근본 기분은 '고독(Einsamkeit)'이다. 우리가 모든 사물들의 본질에 이르면서 그 이웃이 되게 하는 본래적인 힘으로써 고독이 지배 정서로 자리하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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