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사방이 신록의 물결로 넘실거리는 5월, 인문학의 고장 전남 담양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광주시 각화동 시경계를 벗어나 망월동 5·18 민주묘지 진입로 부근에 접어드니 곳곳에 걸린 추모 현수막이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5월은 그렇게 풀빛과 먹먹함이 이중의 층위를 이루고 있습니다.
전남 담양군 고서면 동운리에 닿으니 여느 농촌처럼 고즈넉한 전원풍경이 펼쳐집니다.
얼그실 마을로 불리는 이곳에 오늘 인터뷰할 주인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향토지리 연구자 김경수 박사(64)입니다.
◇담양 고서에 정착, 향토지리 연구에 전념
김 박사는 광주시내 중·고등학교에서 20여 년간 지리교사로 재직하다가 지난 2016년 퇴직한 후, 이곳에 머물면서 향토사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는 영산강 연구로 광주·전남 향토사 연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입니다.
‘영산강 수운연구’(1987)로 석사학위를, ‘영산강 유역의 경관변화 연구’(2001)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영산강 삼백오십리’(향지사, 1995)를 펴낸 바 있습니다.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극심한 가뭄으로 강과 하천의 생태계가 변화함에 따라, 올해는 새롭게 영산강 수계 탐사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영산강 이외에도 그는 향토사 연구와 관련한 수많은 저술과 집필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광주·전남 시·군·구 지리지 편찬에 활발하게 참여해오고 있습니다.
광주동연혁지(1991), 호남명촌 금안동(1992), 구례문척면지(1992), 장흥유치면지(1993), 장흥장평면지(1996), 나주 다시면지(1997), 광주서창지리(2016) 등등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또한 2021년부터 광주매일신문에 ‘광주 최초 땅 이야기’란 타이틀로 행정제도와 개발의 관점에서 광주의 변화하는 모습을 3년째 연재 중입니다. 근대화 시기부터 시간 흐름에 따른 도시발전의 축을 따라 장소와 인물, 건물 등 도시의 인적·물적 요소들을 시계열적으로, 압축해서 훑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광주의 역사를 실증적이고 과학적으로 기록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업적으로 지난해 ‘제1회 박선홍 광주학술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그는 2022년 말까지 연재한 73회 기사원고를 묶어 올해 1월 ‘김경수 광주지리탐구’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3만권 도서 소장…장차 1백만권 수집 목표
여순 살이 넘은 그에게 한 가지 꿈이 있습니다. 광주역 앞에 ‘향토자료 종합도서관’을 건립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그는 틈틈이 지역 관련 도서를 모으고 있습니다.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의 대명사인 종이책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를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귀띔해줍니다.
“책은 반도체 메모리칩(chip)과 같습니다. 낱개의 자료들을 하나로 묶어서 지식의 숨결을 불어넣는 게 책이지요”
그의 전원주택에는 대략 3만 권의 책들이 3개 동의 창고 서가에 빼곡하게 진열돼 있습니다.
그가 책에 애착을 가지게 된 것은 고교 학창시절부터라고 합니다.
“서석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돈이 없어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접할 수 없어서 중고서점을 돌아다니며 헌책과의 만남을 통해 갈증을 풀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그가 헌책과 남다른 만남을 갖게 된 것 또한 향토사(전라도학) 연구와 관계가 깊습니다.
향토사 연구를 위해서는 다방면의 지역 자료를 섭렵해야 하는데, 광주·전남 자료들을 한 군데서 집약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 드물다는 겁니다.
“지역학회 등에서 발간하는 연구총서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보관할 곳이 없어 폐지로 버려지기 일쑤이고, 도서관에서도 찾는 이가 별로 없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라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가 수집한 책들은 대부분 동료 연구자들이나 지인들로부터 얻은 것들입니다.
경기도 과천 추사박물관으로부터 트럭 한 대 분량의 도서를 전달받았는가 하면, 고 박선홍 선생이 생전에 서재에 두고 읽으시던 향토사 자료를 가족으로부터 기증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수집한 책의 종류는 잡지, 전문서적, 논문 및 연구서, 문학류, 역사서 등 마치 대학도서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합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모으고 있지만, 향토연구자로서 향토사 자료에 더 눈길이 간다고 합니다.
‘예향’, ‘대동문화’, 광주·전남 시·군·구보뿐 아니라, 지금은 발행이 중단된 시사잡지 등 광주·전남지역과 관련된 향토자료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습니다.
이처럼 낡은 책들을 귀한 보물인 양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그를 보는 가족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합니다. 그는 “가족들이 향토자료를 수집하는 것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재활용품이나 모으는 사람으로 취급할 때 난감해진다”고 토로했습니다.
“우리 지역 자료들이 사라지기 전에 이들을 한데 모아 ‘전라도학의 메카’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작별 인사처럼 던진 말이 가슴에 파문 짓습니다. 그의 포부가 꼭 이뤄지길 응원합니다.
“향토자료 모아 ‘전라도학(學) 메카’ 만들고 싶다”
영산강 연구로 광주.전남 향토사 연구에 한 획
광주역사 실증화 공로 ‘제1회 박선홍 광주학술상’ 수상
영산강 연구로 광주.전남 향토사 연구에 한 획
광주역사 실증화 공로 ‘제1회 박선홍 광주학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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