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사항]
출생 1955년 2월 17일, 고향 완도군 고금도 덕동리 출신. 광주서석초, 광주서중, 광주제일고를 거쳐 건대행정학을 졸업, 행정고시 21기로 공직에 입문했다. 병역은 카투사 병장만기제대. 좌우명은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다. 남을 대할 땐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자신에겐 서릿발처럼 엄격하라는 뜻.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 즐겨하는 운동은 등산이라고. 선호하는 음식은 된장찌개다. 좋아하는 술은 소주고, 녹차를 즐겨 마신다.
[어린시절]
섬마을 넉넉했던 집안의 소년이었던 그는 학교 성적이 항상 1등을 할 만큼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섬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그. 여름엔 배 밑으로 뛰어 반대편으로 나가는 놀이, 망둥어 낚시 등을 즐겼다고 한다. 김영록이 회상하길 어린 시절엔 모든 것이 최고였다고. 초등학교 6학년 그가 광주로 유학을 가기 전까진 말이다.
[시련]
김영록에게 광주 유학은 고난의 나날이었다. 전학 후 첫 수학시험에서 100점 만점에 10점을 맞았다. 시골에선 항상 1등을 했던 그가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런 문제들을 접하지 못 했던 터라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더해 부친의 병환으로 인해 집안사정도 급격히 나빠졌을 뿐만 아니라 설상가상 입시를 앞두고 김영록은 폐결핵에 걸려 각혈까지 할 정도로 건강상태도 좋지 못했다. 삼수 끝에 4년 장학생으로 건국대 행정학과에 입학하게 된 김영록. 서울대 갈 성적은 안 되고, 연고대 가기엔 등록금이 비싸 갈 수 없어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 기울어진 가세와 출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행정고시를 준비한다.
[30대 군수]
1977년 제21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곡성 부군수실에서 행정사무관 시보로 공직을 시작했다. 1994년 전라남도 강진군수를 역임했는데, 그 당시 김영록의 나이는 39세. 이때는 군수도 중앙정부에서 발령을 내는 시스템이었다. 7개월간의 근무를 뒤로 하고 이듬해 자신의 고향인 완도에 군수로 부임했다. 당시 내부무에 있던 선배가 중앙으로 올라오라고 했지만, 민선자치를 불과 1년 앞두고 있던 시점이라 앞으로 고향에서 근무할 기회가 없겠다는 생각에 완도군수로 남았다고. 차기 완도군수에게 자리를 넘겨줄 때는 감정 주체가 안 돼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그만큼 정이 들었다는 방증. 그러나 주변에서는 다음군수 출마를 위한 포석 아니냐며 의심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정계입문]
김영록은 자신의 첫 국회의원 선거 운동 중 눈물을 쏟은 바 있다. 때는 2008년 1월, 전남부지사에서 물러난 뒤 정계에 뛰어든 김영록은 당시 통합민주당 해남·완도·진도 지역구 공천심사에서 민화식 전 해남군수에 밀려 공천을 받는 데 실패했다. 김영록은 결국 기호 7번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민주당 지지세가 워낙 강한 지역에서 민화식 후보에게 선거 내내 밀리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선거 막판 민 후보의 금품제공 의혹이 불거지면서 선거판이 요동쳤는데, 무소속 김영록 후보가 통합민주당 민화식 후보를 기적처럼 누르고 당선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선거 초반 어려움이 너무 많아 차 안에서 울기도 했지만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모여들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지지를 호소하는 등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
[청탁 누명]
김영록은 '행시 청탁 의원'이라는 누명을 쓴 바 있다. 때는 2011년, 조선일보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의원의 문자메시지를 촬영해 보도한 적이 있는데, 메시지 내용은 이러했다. '행정고시 3차 면접만 남았는데 면접관들에게 힘 좀 써달라.' 당시 보도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당인지 밝히지 않았다. 이를 본 네티즌 수사대는 사진 속 의원의 신체 일부를 토대로 청탁 받은 의원을 직접 찾아내기 시작했는데, 김영록을 지목한 것이다. 매우 억울했던 김영록, 자신이 아니라는 구체적인 증거들을 나열하며 여론을 바꿔나갔다. 결국 최초 보도했던 조선일보에서 '한나라당 소속 A의원'이라며 해명을 하기도.
[비서실장]
김영록은 비서실장 역할만 4번을 한 바 있다. 공무원 시절 허경만 전 전남도지사의 비서실장, 정치에 입문한 뒤에는 박지원, 원혜영, 김두관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비서실장 전문가라 불러도 가히 무방하다.
[타고난 관운]
김영록은 관운이 좋다는 평가가 다수다. 행시 출신으로 강진군수, 완도군수, 전남도 행정부지사 등을 지냈고,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당내에서 사무총장, 수석대변인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바 있다. 안철수 열풍이 불어 한때 국회의원선거에서 낙선한 바 있지만 농림부 장관, 전남도지사를 거쳤다. 이에 대해 김영록은 '준비되지 않는 사람은 운이 따르더라도 잘 해낼 수 없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만 그 운을 살려낼 수 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다.
[논란]
김영록은 자신의 이름으로 3편의 자서전을 출간한 바 있는데 각 자서전의 내용의 상당 부분이전에 출간한 책을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출간 시점이 총선을 앞두거나, 전남지사 출마 시기와 겹치면서 논란이 커졌는데, 이를 통해 정치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문을 산 바 있다. 이에 대해 김영록은 "정치인으로 자신을 알리기 위해 출간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사실 김영록은 다른 유명 정치인들에 비해 논란이 딱히 없다. 그래서인지 인지도 또한 유명한 편은 아니다.
별다른 굴곡 없이 우상향을 그려온 김영록. 그는 이번 지방선거에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한다. 그는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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