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춘삼월입니다. 온 세상 봄꽃이 만개하기 시작합니다. 매화꽃이 쌀쌀한 바람결을 뚫고 맨 먼저 피어나더니 살구꽃도 덩달아 눈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이에 뒤질세라 벚꽃은 엊그제 내린 빗물에 몸을 적시고는 일시에 하얀 물감을 뒤집어쓴 듯 확 피어 버립니다.
촛불처럼 봉오리를 밀어 올렸던 살빛 목련은 벌써 돌담 아래로 꽃잎을 뚝뚝 떨어드리고 있습니다. 울타리 사이로 휜 허리 쭉쭉 벋어 내리며 샛노랗게 피어나는 개나리도 반갑기만 합니다.
조금 지나면 진달래와 철쭉도 팡팡 피어나겠지요. 정말 화창한 봄날입니다. 이렇듯 봄꽃들의 개화 시기가 예년보다 2주 가까이 빨라졌다고 하니 봄은 마음이 바쁜가 봅니다.
이제는 코로나19 상황이 사실상 끝났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봄다운 봄을 맞이하려 합니다. 대부분의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벗고 숨 쉬게 되었으니 봄은 생명의 계절입니다.
그동안 지구촌 전체가 감염병이라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터널을 지나며 안타까운 사연도 많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새 계절을 맞습니다. 평온을 되찾아 즐겁고 행복한 날들을 향해 저마다의 발길을 옮겨갑니다.
지금 밖에는 코로나 때문에 3~4년 동안 열리지 못했던 봄 축제들이 지역마다 한창입니다. 겨우내 조용했던 프로야구도 이번 주 시범경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개막을 알리며 팬들의 함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봄이 왔으니까 다시 시작하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계절은 속절없이 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사람들은 올해도 되새기게 됩니다.
'춘래불춘래(春來不春來)',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계절만이 제 때 제대로이고 사람의 일은 정상인 것이 없어 보입니다. 아름다운 계절 봄을 느끼고자 해도 몸과 마음이 편해야 가능할 텐데 말입니다. 뉴스를 보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식탁의 물가를 보면 지갑 열기가 무섭다고 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일도, 삶도 모든 게 봄볕처럼 따뜻하지만은 않기 때문이겠지요. 선거 때마다 잘 살게 해 주겠다고 했던 정치는 왜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제대로 풀어주지 못하는 걸까요? 하겠다는 일마다 반대에 부딪치고 정쟁의 피로감은 더욱 높아만 갑니다.
아시다시피 정치판은 계절감을 잊은 듯 시끄럽습니다. 여당과 야당은 아침회의가 열리기가 무섭게 마구마구 치고 박는 쌈질에 매달린 듯 보일 뿐입니다. 서로를 비판하고 국민여론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정말 한심합니다.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은 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지금 하는 꼴을 보면 싹 갈아엎어도 시원찮을 것만 같습니다.
최근 있었던 한일정상회담 뒤 끝의 국론분열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야당과 진보진영은 굴욕외교라고 거리에 나앉아 정부를 규탄합니다. "일본에 잔뜩 퍼주기만 하고 받아낸 게 없다"며 연일 집회를 열어 여론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더 이상 과거사에 머물러선 발전이 없다는 논리로 맞짱을 뜹니다. 양쪽 모두 국민 설득에 나서고 있지만 반응은 싸늘합니다. 이 좋은 봄날에 이 나라는 갈등과 대결이 계속되니 국민의 짜증지수는 올라만 갑니다.
경제도 좀처럼 국민의 생계부담을 줄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벌이는 갈수록 시원찮은데 물가는 계속 뛰어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더니 내려갈 땐 더디기만 합니다. 경유 값이 휘발유 값 아래로 내려간 것 외엔 아직도 1,500원 선 안팎을 물고 있어서 서민 가계를 옥죄고 있습니다.
국민 최고의 배달음식 치킨 값의 고공행진을 보면 기가 찹니다. 이러다 치킨이 부자들만 먹는 고급식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한 마리에 3만 원'이면 배달 주문을 넣으려다 망설이는 일도 다반사일 것 같습니다. 이러니 봄이 왔다고 치킨 사들고 봄꽃 나들이를 쉽게 나갈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오늘 핫뉴스에 뜬 통계를 보면 갈수록 우리 사회에 대한 우려와 탄식은 커집니다. 요즘 젊은 층의 결혼이 늦어지거나 포기하는 세태는 그다지 낯선 경우도 아닙니다. 하지만 가정은 사회의 근간이고 국가와 민족의 미래임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경제적 이유와 사회적 인식의 변화로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나 봅니다. 이 사회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해봅니다.
이 시대가 과거에 비해 모든 게 좋아졌다고는 하나 21세기 한국사회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기가 힘들어졌다는 사실도 증명된 셈입니다. 정부가 대책을 세우고 정책을 편다고 해서 단기간에 해결될 사안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국민과 세대가 '소멸 한국'이라는 그다지 멀지 않은 장래의 위기를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지역사회도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쓴소리를 뱉어내기 일쑤입니다. 민선 8기 들어 불통이 더욱 심화됐다는 겁니다. 의회도, 시민사회도, 언론도 잇따라 비판의 목청을 높입니다.
계절은 문 밖에 소리없이 다가와 있습니다. 사람 사는 주변은 늘 그렇듯 말도 탈도 많습니다. 그래도 내가 사는 이 시대가 가장 잘 사는 시대라고 믿고 싶습니다.
문명과 기술의 발달로 더 안전하고 더 편리하며, 더 즐기며, 더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사람들은 왜 사는 게 힘들다고 할까요? '비우는 게 답'이라고 하면서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생각을 또 해봅니다.
봄의 달음박질은 '가장 잔인한 달' 4월을 향해 뛰어가고 있습니다.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지요.
이 화창한 봄날에 [김옥조 칼럼]이 다시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세평의 돋보기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많은 성원과 소통 기대합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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