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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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라도 돋보기]일제강점기 '노다지'로 들썩거린 임곡동(2편)
    일제강점기 '노다지'로 들썩거린 임곡동(2편) 임곡은 금광 개발과 더불어 순식간에 소도시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특히 1914년 임곡역이 들어서면서 지역은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기존 원(元)임곡에 있던 기관들이 역이 소재한 신(新)임곡으로 옮겨오고 지서와 면사무소, 우체국, 학교 등 각종 기관들이 포진해 행정치소로 발전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전기 가설도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 이뤄졌습니다. ◇ 갱도 길이 3~4㎞, 미로에 갇히기도 금광은 1970년대 초반까지도 유지됐는데 금을 얻기 위해 캐낸 석재
    2024-07-28
  • [전라도 돋보기]전국서 1천여 명 '골드러시'..금광굴 지금도 '생생'(1편)
    전국서 1천여 명 '골드러시'..금광굴 지금도 '생생'(1편) 영산강 원류인 황룡강이 누런 용처럼 꿈틀대며 지나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이 곳은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 인근 용진산에서 금광이 발견돼 '노다지'로 들썩거린 골드러시(gold rush)의 땅입니다. 폐광 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희미해졌지만, 용진산에는 지금도 금광굴이 여러 군데 남아있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금광 갱구가 89개, 금광맥은 천 척(尺) 이상의 것이 11개나 있었다고 전합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한반도의 광
    202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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