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광주비엔날레] 주제 전시 관람기 ②

작성 : 2023-04-11 09:52:11 수정 : 2023-04-20 13:44:36
'광주정신' 영감 받은 저항·연대의 예술세계
첫 번째 소주제 ‘은은한 광륜’…지역성 부각
오윤·강연균·신명 등 한국민중예술운동 조명
관람객 통로에 작품배치로 전시 연결성 유지
‘선 이미지·후 메시지’ 전달로 난해함 제거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4월 6일 개막했습니다. 오는 7월 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Soft and Weak like water)’입니다. 전 세계 각국에서 79명의 작가가 참여한 2023광주비엔날레 본 전시회는 대주제를 탐구하는 4가지 소주제 별로 전시장을 꾸몄습니다. KBC는 김옥조 선임기자의 이번 전시회 취재 관람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제1전시장에서 제2전시장으로 올라가는 통로 벽면에는 한국작가 이승애의 ‘벽화 및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작품이 그려져 1층에서 2층으로 전시공간을 연결시켜 준다.

◇ 소주제 ‘은은한 광륜’(제2전시장)

주제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Soft and Weak like water)’를 각각 4개의 소주제로 나눠 전시장을 구성하였습니다. 첫 번째 소주제 ‘은은한 광륜’의 전시는 광주의 정신을 영감의 원천이자 저항과 연대의 모델로 삼고 있다고 전시기획자는 밝힙니다.

이 전시는 도입부 ‘들어서며’를 통과하자마자 2층 전시장에 닿기도 전에 펼쳐집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통로 옆 거대한 벽면에 벽화형식으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작가 이승애의 ‘벽화 및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입니다.

사실 비엔날레전시관의 층고가 높아 층간 이동 거리가 길고 사선으로 꺾여 있어서 이동 간에 전시회가 끊기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민간신앙에서 망자의 슬픔을 씻어내는 씻김굿에서 착안한 ‘서 있는 사람’에서 착안한 벽화와 연결통로 중간 벽에 애니메이션 영상을 설치해 전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더불어 관람객들에게는 작품을 향해 가는 눈길과 생각을 지속적으로 유지시 켜주는 효과를 유발합니다.

‘은은한 광륜’의 제2전시장은 입구에서부터 툭 트인 공간에 넓은 시야를 확보해 줍니다. 이는 관람객들에게 현대미술전시회와 작품들의 낯섦과 심리적 갈증을 풀어주게 됩니다. 제1전시관이 어둡고 무겁게 시작하였다면 이곳은 밝은 공간으로 전환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선도 자유롭게 흐르도록 풀어놓았습니다. 조심조심 걷던 발걸음이 가볍게 작품을 향해 방사형으로 퍼져나갑니다.

이곳의 작품들을 주로 평면 회화 중심으로 전시해 관람객들이 작품에 다가서는데 부담이 덜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설치와 영상 같은 작품들도 있지만 벽면과 공간 설치로 구성되어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올려보며 비껴보는 구성을 해 놓았습니다.

전시장 입구를 넓게 열어 놓아 쉽게 들어갈 수 있게 했다가 안으로 이동해 가면서 좌우로 공간 구획을 하는 배열을 통해 먼저 이미지를 주고 나중에 점차 메시지를 다져주는 효과를 의도하는 듯합니다.

▲말레이시아 작가 팡록 술랍은 목판화 연작 ‘광주 꽃 피우다’(2023)를 제2전시장 초입에 걸개그림 형식으로 선보이며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눈길을 잡는 작품은 말레이시아 작가 팡록 술랍의 목판화 연작입니다. 목판화는 그 선이 두텁고 날카롭기 때문에 주제와 메시지도 매우 강한 직설적 작품에 쓰입니다. 그래서 현대미술전시회에서 전 세계의 현재적 이슈를 담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흔하게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팡록 술랍은 목판화 연작 ‘광주 꽃 피우다’(2023)를 제2전시장 초입에 걸개그림 형식으로 내걸었습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까지에 해마다 5월이면 금남로에서 봤던 ‘오월전’과 걸개그림전을 보는 듯합니다.

알고 보니 광주출신 목판화 작가들과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기록들을 답사하여 광주시민들의 삶을 작가의 시각으로 재해석하였습니다.

▲한국작가 유지원의 벽체설치작품 ‘한시적 운명’(2023)은 도시개발에서 일어나는 환경파괴에 주목한다.

구석진 곳의 벽면에 자리한 유지원의 작품 ‘한시적 운명’(2023)은 도시개발에서 일어나는 환경파괴에 주목합니다. 도시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고 가장 안전하고 편리하며 경제적인 공동체 사회의 기반입니다. 인간의 보다 나은 생존을 위해 자연과 환경을 훼손해야 하는 문제를 들여다본 것입니다.

광주의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파리 유학을 떠나 사적이고 개인적인 기억의 장소인 집과 한국의 건축양식을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이번 작업에서는 판지 상자, 시멘트, 페인트 등의 자재로 건축적 언어로 표현된 벽체 설치작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국민중미술운동의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진 오윤의 목판화 ‘칼노래’
한국적인 화풍으로 널리 알려진 민중미술가 고 오윤의 목판화 연작도 뒤편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노동의 새벽 습작’을 비롯하여 ‘지리산’, ‘징’, ‘춤’, ‘칼노래’ 등 민중미술운동을 대표하며 선보였던 익숙한 작품들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민중미술운동의 재소환이라고 생각됩니다.

전시장 왼편으로 돌아서면 만나는 파라 알 카시미의 작품 ‘특별한 날들을 위한 편지’(2023)는 난해하다는 현대미술의 선입견을 사라지게 합니다. 개인적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부각한 이 작품은 아랍문화와 양식 등에 관한 시각을 벽면 전체를 가로질러 꼴라주와 오브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당극 공연을 미술의 관점으로 전시장에 품은 작품도 인상적입니다. 알리자 니센바움은 광주의 대표적인 놀이패 ‘신명’과 협업하여 회화와 설치, 그리고 음향을 조합한 작품으로 ‘언젠가 봄날에’(2010)라는 마당극을 끌어들였습니다.

오윤의 목판화 못지않게 80년대 이후 한국민중예술운동을 견인하며 민초들의 아픔과 외침을 대신해 온 극단이 ‘신명’입니다.

▲알리자 니센바움의 작품은 광주 놀이패 ‘신명’의 마당극 ‘언젠가 봄날에’를 회화와 설치, 그리고 음향을 조합한 작품으로 구성했다.

작가는 벽면에 회화와 공연현장의 음성 또는 음향, 마당극 공연장을 구성하였습니다. 벽면의 그림 4점은 탈춤을 추는 배우들의 군상을 화려한 색감으로 사실감 있게 그렸습니다.

바닥과 좌측 벽면은 황갈색 오브제로 붙여 연결하고 전면과 우측 벽체는 목재 서가형식을 그대로 살려냈습니다. 평면의 밋밋함을 제거한 듯 보입니다.

중앙 가운데 전등처럼 스피커가 매달려 5·18 당시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배우들의 연기로 흘러나옵니다. 마당에서 펼쳐지는 공연인데 배우들은 모두 그림 속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중앙 무대에서는 소리만 들리도록 하여 시각과 청각을 통해 현장을 상상하도록 기획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탈춤 배우들을 그린 회화는 수준급입니다. 회화의 기본 요소인 점·선·면을 활용하여 구상과 비구상의 화면 구성을 보여줍니다.

▲광주의 원로화가 강연균 화백의 ‘화석이 된 나무’는 광주비엔날레의 지역성과 정체성을 연결해 준다.

여기서 ‘민중미술운동’에 적극 참여한 광주의 원로화가 강연균 화백의 작품도 만납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창설 당시 ‘광주통일미술제’를 주도하며 망월동 묘역 일대에서 만장전과 상여 굿을 통해 이른바 ‘안티비엔날레’를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강 화백은 이번 전시회에 ‘화석이 된 나무’(2017~2023) 5점을 출품하고 있습니다. 밤하늘 같은 먹색을 바탕으로 하얀 선들의 교차와 중첩으로 나뭇가지와 문살의 느낌을 주는 추상적 표현의 작품입니다.

제2전시장의 작품들은 5·18광주민주화운동 43주년을 앞두고 예술가들의 작업을 통해 정치적 갈등과 국가폭력에 저항하고 고통받고 고민해 온 사람들을 대변해 준다는 생각입니다. 미술이 사회적, 정치적 참여를 함으로써 민중을 일깨우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의미를 알게 합니다.

▲마우고르자타 마르가 타스의 회화 3점은 버려진 옷을 재활용하여 로마 공동체 사람들의 일상을 표현하고 있다.

전시장 맨 안쪽 벽면에 자리한 마우고르자타 마르가 타스의 회화작품 연작 3점은 화려하고 평범하며 편안합니다. 그러나 가까이 살펴보면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이미 쓸모없는 옷들을 재활용하여 평범한 시장 옷가게를 스케치하듯 그렸습니다.

재료와 기법, 구성에서 일반적인 회화와 다른 특징을 가졌습니다. 인물들의 모습을 다루면서도 기성품 옷을 잘라 잇대고 붙여 형태와 색감, 공간을 채워 넣어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버려지는 옷들로 인한 환경 폐기물 오염 문제를 지적하는 메시를 담았습니다.

폐품이나 산업 쓰레기가 작가의 상상력과 사회 참여적 의지가 합쳐져서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정크아트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림을 물감과 붓으로 캔버스에 그리는 일반적인 형식을 탈피하여 퀼트와 바느질 기법으로 그 옷을 버린 사람들의 일상을 잡아 낸 것입니다.

▲크리스틴 썬 킴의 작품 ‘모든 삶의 기표’(2022)는 전시장 바닥을 화면으로 하여 관람객이 작품 속으로 들어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결과를 연출한다.

크리스틴 썬 킴의 ‘모든 삶의 기표’(2022)는 전시장 바닥을 화면으로 하여 눈길을 고개 숙여 아래로 끕니다. 내용은 미국 수어에서 숫자를 세는 방식을 바닥에 영상으로 비춥니다.

손가락의 영상을 펼쳐서 전시공간의 틀을 부수고 관객의 시선이 가는 곳에 작품과 작가의 의도가 닿도록 하여 관객이 그 작품 속으로 들어가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광주의 여고생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작품도 관심이 갑니다. 한국작가 김순기는 전남여자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작업한 4채널 영상 설치작품 ‘광주, 詩’(2023)를 출품하였습니다. 학생들의 시 읽는 소리와 물의 이미지가 합쳐져 명상적 공간을 제공합니다.

제2전시장을 나오며 ‘은은한 광륜’을 생각해 봅니다. 광주비엔날레가 지향하고 담아야 할 ‘광주정신’에 많은 공간과 목소리를 참여토록 하였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광주의 작가와 시민과 그리고 ‘5·18’로 인해 분출된 시대상황을 다시 한번 더 예술의 시각으로 다독이고 안아주고 가는 것 같아 ‘은은한 강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 기사는 3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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