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5월 27일은 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 날. 금남로를 비롯한 광주 시내 거리에는 붉은 연등이 내걸려 사바세계를 환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 즈음, 산중 사찰은 부처님 오신날 봉축 행사 준비로 눈코 뜰새 없이 분주합니다.
필자는 지난 24일 광주시 동구 용연동 무등산 자락에 둥지를 튼 천룡사에서 수행 정진하는 무등스님(속명 홍상훈)을 만나러 갔습니다. 용연마을 회관 앞 정자로부터 골목을 지나서 절 마당에 들어서니 연등이 푸른 하늘 아래 두둥실 떠 있습니다.
◇ 포교지 ‘여설수행’에 부처님의 깨달음 시로 표현
천룡사는 백양사 말사로 50년 전 벽상 큰스님이 창건한 작고 아담한 사찰입니다.
무등스님은 모시던 벽상 큰스님이 열반에 들자 천룡사 2대 주지로 취임, 이곳에서 20년 넘게 거처하며 중생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요사채에서 부처님 오신날 봉축행사를 준비하다가 필자를 본 무등스님이 연등만큼이나 환하게 미소 지으며 반갑게 맞이합니다.
무등스님의 손에는 때마침 포교지 ‘여설수행’이 들려 있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봉축법회 때 신도들에게 나눠줄 일종의 소식지이자 마음의 양식입니다.
40쪽 소책자에는 발원문, 수능엄경 해설, 산사순례법회 후기, 성현들의 수행담, 주지스님 법문, 그리고 봉축 축시 ‘부처님 오시는 길’이 소담스럽게 실려 있습니다.
스님은 출가자이지만 문단에 등단한 시인으로서 틈틈이 시를 써서 발표하고 있습니다.
무등스님은 1일과 15일 매달 2차례 발행되는 포교지 ‘여설수행’에 꼬박꼬박 시(詩) 한 편씩을 싣고 있습니다.
무등스님은 1994년 『열린시조』로 등단한데 이어, 시 ‘도량석(道場釋)’이 『한국문단』에 발표되어 시인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지난해에는 그동안 수행 중 틈틈이 써 모은 작품 가운데 80여 편을 골라서 첫 시집 ‘능소화가 피는 날’(수미등)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스님이 시를 쓰게 된 것은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한바탕 병고를 치른 후 다시 몸을 추스르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늦은 나이에 대학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문학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문학을 접하고 나서부터 마음밭이 풍성해지는 느낌입니다”.
결국 병마로 인해 심신의 고통을 겪은 후 무등스님의 인생이 크게 달라진 셈입니다.
스님의 마음속에 시상이 떠오르는 순간은 기도하는 중이거나 해가 뜨거나 지는 모습,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접할 때 그리고 일상생활 중에 발아된다고 합니다.
◇인도 성지순례중 떠오른 시상, 강렬한 감동 전달
무등스님의 시 세계를 아우르는 정신적 토양은 아무래도 불교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한 평생을 부처님을 쫓아 정진해온 수행자로서 오로지 정법(正法)을 향한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구도자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첫 시집에서도 불교와 관련된 시가 여러 편 포함돼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필자에게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선 작품은 ‘별 천지 인디아’입니다. 아마도 무등스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하면서 여러 지역을 방문하던 중 떠오른 시상을 한 편의 시로 응축시킨 것으로 보이는데 매우 독특한 느낌을 안겨줍니다.
특히 시상을 전개해가는 방식과 표현기법이 이국적인 풍경과 잘 어우러져 강렬한 경험을 전달합니다.
-별 천지 인디아-
우리는 보았다
별 천지 인디아를
새벽이면 하얀 물병을 들고
밤안개가 걷히기 전에
들판으로 나서는 모습들을
끝없이 밀려오는 안개를 뚫고
힌두인들은 새로운 날을 맞이하러
집을 나서면서 길거리에
몰려나와 주섬주섬 앉아있는 모습을
× × × × × ×
우리는 보았다
별 천지 인디아를
델리의 길거리를 달리면서
별이 쏟아지는 모습으로
화려한 이국異國적인 낭만의 밤이
첫사랑처럼 찾아왔었던 손길을
아우랑가바드의 기찻길에서
몸베이의 새벽길에서
바라나시의 힌두인의 전통제사 의식에서
떠도는 영혼들의 고달픈 노래 소리를 듣고
밤 깊은 골목길을 쏜살같이 지나가는 모습을
× × × × × ×
우리는 보았다
별 천지 인디아를
보드가야 대탑아래 부처님의 깨달음을
라즈기르 날란다 대학의 장엄함을
바이샬리의 석주를 보면서
부처님의 수행을 따라 실천하든 모습을
룸비니에서
쿠쉬나가르에서
쉬라바스티에서 역사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밤새 달려온 화물자동차의 줄지어선 모습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속에
인디아의 별천지를 보았네.
(시 일부 발췌)
인도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이후 본격적으로 설법을 펼친 불교 성지이면서도 국교인 힌두교가 왕성합니다.
수행자나 불자뿐만 아니라 생전에 누구나 한번 쯤 여행하고 싶을 정도로 신비스러운 나라입니다.
특히 갠지스강은 생과 죽음을 초월하는 성스러운 강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곳입니다.
무등스님은 인도 성지 순례를 하면서 수많은 경이로운 장면을 목격했고 그 때마다 시상이 샘솟듯 솟아났습니다.
꽤 긴 시이면서도 리듬과 긴장감이 살아있으며 장면의 대비가 역동적입니다.
이는 그 만큼 시인이 그 현장으로부터 강렬한 시적 에너지를 흡입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게다가 각 연이 한 장의 흑백사진을 보는 듯 엄숙하고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해 몽환적이기까지 합니다.
‘새벽이면 하얀 물병을 들고/ 밤안개가 걷히기 전에/들판으로 나서는 모습들’, ‘별이 쏟아지는 모습으로/화려한 이국(異國)적인 낭만의 밤’, ‘바라나시의 힌두인의 전통제사 의식에서/ 떠도는 영혼들의 고달픈 노래 소리’ 등 구절은 매우 회화적이면서도 기이한 감정을 유발합니다.
이 시에서 가장 울림을 주는 구절은 ‘밤이면 수북이 내려앉은/ 별무더기를 붙잡고/ 고향 노래 부르는 소리를’이라는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순례자로서의 순수한 마음이 잔잔한 물결로 파문짓습니다.
◇ 타고난 시심, ‘능소화’보다도 붉은 구도자의 노래
무등스님의 시 세계를 보면, 작품 전반에 부처님을 향한 깊고 그윽한 향기가 물씬 풍겨납니다.
그리고 그 근원은 무등스님이 오로지 부처님의 정법을 구현하기 위해 구도자의 삶을 올곧게 수행 정진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한마디로 무등스님의 시는 ‘능소화’보다도 붉은 구도자의 노래입니다.
스님이 문학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갑작스러운 병마 때문이었지만, 어쩌면 타고난 본성에 시심(詩心)이 자리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깊은 불심과 더불어 시 정신이 더욱 풍성하고 우람하게 뻗어나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편, 무등스님은 사진에도 남다른 취미가 있어 광주매일신문 전국사진대전에 수차례 입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 4월까지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를 맡아 생명존중과 환경보존 운동에 앞장서 왔습니다.
"시편마다 부처님을 향한 깊고 그윽한 향기 넘쳐나…"
천룡사 2대 주지로 취임, 20년 넘게 부처님 말씀 전파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를 계기로 문학과 인연
지난해 첫 시집 ‘능소화가 피는 날’ 출간
올해 4월까지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맡아
천룡사 2대 주지로 취임, 20년 넘게 부처님 말씀 전파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를 계기로 문학과 인연
지난해 첫 시집 ‘능소화가 피는 날’ 출간
올해 4월까지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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