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진짜 의료 위기, 신뢰 붕괴에서 온다"

작성 : 2024-02-29 14:50:57 수정 : 2024-02-29 16:16:34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 이어진 현장의 의료 대란.

끝없이 갈등으로만 치닫고 있는 현실 속에서 정작 고통받는 곳은 의료 현장 속의 환자 그리고 의료진입니다.

바람과 희망을 안고 만나는 환자와 의료진의 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로간의 신뢰이지만, 지금의 사태는 이 모든 것을 흔들리게 하고 있습니다.

매일의 현장에서 환자와 신뢰를 쌓으며 '치유'와 '치료'를 위해 힘쓰고 있는 의료진들은 작금의 사태에 안타까움과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국민과 의사 모두 고통스러운 시국"이라며 "정말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닌 과정이다. 정부는 강압적이고 비민주적인 행태로 의사와 환자간 신뢰 관계, 라포(Rapport)를 붕괴시켜서 진짜 의료 위기를 초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음은 정 전문의와의 인터뷰.

- 의사들이 사표를 내고 의료 현장을 떠나고 있는데.

"공황장애 때문에 치료를 받는 환자가 '선생님도 파업하실 거냐'며, '그럼 저는 어떻게 치료를 받아야 하냐. 그동안 의사 선생님들을 존경했는데, 이번엔 의사들이 환자를 버리고 파업하는 걸 보고 너무 놀라고 실망했다'고 제게 말합니다. 이전까지 저와 굳건한 상호 신뢰 관계를 갖고 있었던 환자였습니다. 기계를 고치는 것이라면 지식과 기술로 충분하겠지만, 의술의 대상은 기계가 아닌 사람입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선 지식, 기술보다 중요한 게 상호 신뢰 관계입니다. 이것이 라포인데, 라포가 좋으면 치료 경과가 더욱 좋아지며, 라포가 안 좋은 경우 치료가 더디고 불필요한 오해, 분쟁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의사들이 환자를 남겨두고 사표를 내고 병원을 떠나고 있는 겁니다."

-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이 비극적인 사태를 일으킨 건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을 발표한 정부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의료계와의 충분한 협의, 세밀한 사전 조사,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강압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탓에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의사들이 거리로 나서서 정부를 규탄하고 있는 겁니다. 미디어에서는 정부 측 인사와 의료계 인사가 나서서 의사가 부족하다, 그렇지 않다면서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과정에서 노력이 부족했다는 판단인지.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좌우할 중대한 정책을 발표함에 있어서 다양한 의견을 존중해 경청하고, 토론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한 채 권위주의적 명령만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상호 신뢰 없는 강제적인 정책이 설득력을 가질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의료인들은 국가가 위기에 닥칠 때마다 국민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국민의 건강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안위와 이득을 내려놓고 희생적으로 봉사한 의사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방역 선진국으로 세계인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국민의 신뢰를 쌓아온 의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오직 명령과 강압만 일삼는 정부는 신뢰 관계, 즉 라포의 형성에 있어 낙제점입니다."

- 갈등으로만 치닫을 수는 없는 상황인데.

"지난한 설득 과정을 무시한 국가 지도자의 강력한 명령은 얼핏 보면 신속하고 효율적인 묘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남는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후퇴, 상호 불신, 사회 갈등 뿐입니다. 무언가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신뢰를 쌓는 것이 우선입니다. 신뢰를 망가뜨리기는 쉬우나 회복하기는 어렵습니다. 보건 정책을 아무리 개선하더라도 이번에 손상된 의사와 환자 간 신뢰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뢰 없이 온전한 치료는 이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사와 정부의 신뢰 관계는 더욱 처참한 지경이라서 봉합할 방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도,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도 지시하는 입보다 듣는 귀가 우선이어야 합니다. 경청, 이해, 공감은 개인의 치료에도, 민주국가의 통치에도 가장 중요한 기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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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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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옥
    정말옥 2024-02-29 17:40:47
    옳은 말씀입니다.
  • 정말옥
    정말옥 2024-02-29 17:39:52
    적극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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