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사항]
출생 1969년 3월 13일, 고향은 함평군 신광면. 함평여중, 정명여고,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가수 이소라, 엄정화와 동갑이다. 형제가 많은 집의 막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예쁨을 많이 받고 자랐다고 한다. 당시엔 자존심도 세고 고집도 센 편이었다고. 굉장히 활동적이었는데 쉬는 시간에 교실에만 있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틈만 나면 나가서 놀기 바빴는데, 주로 오징어 게임을 즐겼다고. 또 장연주는 칭찬받는 걸 좋아했는데,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나물 잘 다듬는다" 칭찬하면 그게 좋아서 나물을 열심히 다듬었다는 후문이다.
[부당함을 참지 못하는 성격]
장연주는 고3 때 반장, 부반장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을 간 적이 있는데, 그 때 강당 전면에 전두환 사진과 태극기를 같이 붙여놓고 반공의식화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장연주는 왜 이런 교육을 받아야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남자들은 전통놀이를 즐기는 데 여자들만 한복을 입히고 다도, 송편빚기 등을 가르치는 것도 싫었다고 한다. 때문에 한때 워크숍을 '갑분싸'로 만들었다는 후문. 워크숍에 다녀온 뒤 장연주는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그의 평가지에 '반공의식에 문제 있음' 문구가 적혀 담임선생님이 호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톨릭]
대학에 첫 입학해 들어간 동아리가 가톨릭 연구회이다. 신앙심이 깊었던 걸까? 그건 아니라고 한다. 모태신자였던 장연주. '버릴 수 없다면 제대로 공부해서 나만의 신앙관을 갖자'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중학생 때는 일요일 아침 은하철도999 만화영화를 보고 싶은데 성당에 가야해서 싫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 성당에 안 가기 일쑤. 신앙에 마음이 안 갔던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막바지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다음해 아버지까지 돌아가셨다. 언니, 오빠, 형제의 손에서 자란 장연주. 한창 사춘기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달라진 환경이 싫어 신을 원망했을 정도. 장연주에게 신앙은 미뤄둔 숙제와 같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때문에 대학교 입학 후 성경 공부부터 하자는 마음으로 가톨릭학생회를 찾았다. 학생회 옆 방에 가톨릭연구회가 있었는데 '연구회'니까 좀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여기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동아리 선배가 데모하는 공부만 시켰다고 한다. 얼마 되지 않아 무신론자로 만들었다고. 지금도 성당에 다니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학생운동]
87학번인 장연주는 영화 '1987' 시대적 배경 당시의 대학생이다. 대학교 1학년 때 6월 항쟁을 겪었는데 그 사건이 자신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거대한 물결'이라고 표현했다. 날마다 학교에 가 화염병을 만들고 집회를 했는데, 당시 6월항쟁을 겪지 않았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한 그. 노태우가 6.29 선언을 한 날, 자신이 원했던 바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는데 장연주는 뭘 어떻게 해야할지 어안이 벙벙했다고한다. 그래서 그날 만화방에 가서 쉬었다고 한다. 장연주는 만화 '독고탁'을 좋아했는데 주인공 독고탁을 자신의 이상형이라 밝힌 바 있다. 동글동글하고, 성격도, 실력도 좋아서 좋았다고. 2016년 '독고탁' 이상무 작가가 별세했을 때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노동운동]
24살 장연주는 하남산단에 있는 5인치 텔레비전을 만드는 공장에 투신한 바있다. 투신이라 함은 노동현장에 신분을 속여 취업하여 동향을 살피는 일인데, 때문에 돈보다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급선무였다고. 그러기 위해선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했는데 그래서 잔업도 마다하지 않고 일을 굉장히 열심히 했다고 한다. 당시 그가 받은 월급은 30만 원. 직급은 다르지만 본인보다 잔업을 적게 한 남자 기사의 월급은 50만 원이었던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차별과 부당함을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장연주. 이후 노동운동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된다. 결혼 후 장연주는 윤선생 영어학습지 방문교사를 1년 정도 다닌 적도 있다. 출산 100일 만에 일을 시작한터라 아이를 키우는 데 시댁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많은 여성들이 결혼, 출산, 육아시기에 경력단절을 경험하는데 직장뿐만 아니라 사회운동 안에서도 겪게 됐다고. 그런 이유로 장연주는 다시 노동운동계로 돌아가게 된다. 그 시기에 광주여성노동자회에서 활동비를 지급하는 상근직 제안이 왔고,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 장연주의 삶은 사회노동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게 되었다.
진짜 진보정당을 표방하며 야심찬 도전장을 낸 정의당 장연주 후보.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맞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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