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광주비엔날레] 주제 전시 관람기 ④

작성 : 2023-04-13 11:16:45 수정 : 2023-04-20 13:45:39
세번째 소주제 ‘일시적 주권’…디아스포라 주목
개방형 단일 공간 부스 설계로 한눈에 ‘쏙’
회화·사진·설치·영상·문자 등 현대미술 망라
대각선 방향 영상 설치 시·청각·공간감 즐겨
강렬한 지구촌 이슈보다 담담한 메시지 전달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4월 6일 개막했습니다. 오는 7월 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Soft and Weak like water)’입니다. 전 세계 각국에서 79명의 작가가 참여한 2023광주비엔날레 본 전시회는 대주제를 탐구하는 4가지 소주제 별로 전시장을 꾸몄습니다. KBC는 김옥조 선임기자의 이번 전시회 취재 관람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제4전시실은 소주제 ‘일시적 주권’를 통해 후기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미술사상이 이주ㆍ디아스포라 같은 주제와 관련해 발전한 방식에 주목한다. 사진은 장지아의 ‘아름다운 도구들3’ 부스


◇ 소주제 ‘일시적 주권’(제4전시장)

제3전시실에서 제4전시실로 가려면 가교를 건너야합니다. 다소 어두운 전시실을 벗어나와 잠시 하늘을 보고 맑은 공기를 마시는 시간입니다. 난간에 기대어 광장을 내려다보면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붐빕니다.

제4전시실에 다가가면 입구 밖까지 알 수 없는 음악소리가 들려 나옵니다. 현대미술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과 미각, 후각, 촉각에 이르기 까지‘오감’을 자극합니다.

전시장마다 음향효과를 곁들인 작품들이 있습니다. 미술이 눈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귀로 듣는 즐거움도 함께 선사하려는 것이지요.

제4전시실 소주제는 ‘일시적 주권’입니다. 이는 후기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미술 사상이 이주, 디아스포라 같은 주제와 관련해 발전한 방식에 주목한다고 합니다.

과거 비엔날레 전시에서도 다뤄왔던 것인 만큼 이번 전시회에서는 어떻게 풀어갈지 더 궁금해집니다.

▲제4전시실은 개방형 단일 공간으로 설계해 입구에서 보면 좌·우측 공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작품을 펼쳐 놓았다.

이곳 전시실은 개방형 단일 공간으로 설계하였습니다. 물론 부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입구에서 보면 공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180도로 펼쳐 놓았습니다. 우측은 기역자(ㄱ) 벽면에 입체 스크린을 설치하여 다양한 공연영상을 중첩하여 보여줍니다.

또 이번 5개의 전시실 중 가장 ‘현대미술’에 가까운 작품들이 모인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회화, 사진, 설치, 영상, 조각, 문자, 비디오 등의 작품을 총 망라하여 마치 메인 이벤트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동선 구애 없이 자유롭게 작품들 사이를 오갈 수 있습니다. 간단히 쓱 둘러보기도 좋고, 영상 작품 앞 나무 의자에 앉아 쉬어갈 수도 있습니다.

제4전시실까지 오다보면 대부분이 다리가 뻐근하고 허리도 아픕니다. 그렇다보니 관람객에게는 서서히 집중도가 떨어지는 지점이기도 하지요.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시각적으로 열려있고 좌우 대각선 방향에 영상 작품을 마주 보는 구도로 설치하여 시·청각과 공간감을 동시에 즐기며 전시의 지루함을 지워냅니다.

우선 발길은 음악소리 나는 쪽으로 돌리려다 시선이 멈추는 작품이 있습니다. 한국작가 장지아의 평면 작품들로 블루톤의 이미지가 방금 다리를 건너오며 눈에 담은 하늘과 같아 보입니다.

▲한국작가 장지아의 설치작업 ‘아름다운 도구들3(브레이킹 휠)’(2013~2023) 원형 부스 내부.

장지아는 육체의 내밀한 부분이나 본능, 욕망과 같은 사적이고 감각적인 것들을 노출시킴으로써 사회 통념과 관습, 규범을 전복 시키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합니다.

이번 전시회에는 노동의 기구이자 고문의 도구였던 바퀴로 구성된 설치작업 ‘아름다운 도구들3(브레이킹 휠)’(2013~2023)과 청사진 신작을 함께 선보이고 있습니다.

관람객 시선이 닿지 않는 바퀴의 안장에는 '변수', '오밀조밀한 곳', '단죄', '뼈', '땀', '어둡고 텅빈', '제의', '모독', '순환', '우주', '추종자', '찡긋거림'과 같은 단어가 크리스털로 박혀있습니다.

이 12개의 단어들은 빛을 이용해 종이 위의 형상을 전사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청사진에 다시 등장합니다.

▲헤라 뷔육타쉬즈얀의 작품 ‘속세에서 속삭이는 자들’(2023)은 신체와 풍경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을 보여준다.

헤라 뷔육타쉬즈얀의 작품 ‘속세에서 속삭이는 자들’(2023)은 신체와 풍경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콘월의 ‘아홉 처녀들’ 석상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는 의인화된 석상을 통해 그 근저에 있는 표면과 비가시성의 역동성을 살핍니다.

이 작품은 직물 위에 그린 여러 개의 그래픽 드로잉으로 이루어진 작업은 다양한 녹색 빛의 위장된 석재를 체화하여 관객들이 그 사이를 거닐어 볼 수 있는 상징적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작가는 이러한 구성을 통해 자연에 남겨진 인간의 흔적뿐만 아니라 비가시적인 정치학과 그 안에 축적된 역사를 탐구합니다.

▲앨버타 휘틀의 작품 ‘검은 발자국은 아름다운 것이다’(2021)는 에서 벽면에 글을 써 놓고 읽도록 한 것은 전통적 미술의 개념을 탈피한 방식이라 흥미를 더한다.

이미지 조형이 아닌 문자를 사용하여 직설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문자도와 같이 문자의 구성과 형상을 미감 있게 그린 경우는 종종 보아 왔지만 벽면에 글을 서 놓고 읽도록한 것은 전통적 미술의 개념을 탈피한 듯 보여 흥미를 끕니다.

앨버타 휘틀의 작품 ‘검은 발자국은 아름다운 것이다’(2021)에서 조개의 일종인 좀조개를 직접적으로 활용합니다.

그의 작품은 반 흑인 정서와 싸우는 중요한 방법으로서 자기 연민과 집단적 돌봄을 추구하는 욕망에 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한국작가 오석근은 한국의 근현대사와 얽힌 개인의 기억을 찾아 사진으로 재현하고 기록해온 작가입니다. 작가는 개인과 국가 트라우마의 관계를 고찰하고 한국 사회에 남겨진 기억, 상처, 이념, 그리고 이를 유발시킨 권력구조를 탐구해왔습니다.

지난 10여년간 ‘적산가옥’으로 불리는 일본식 가옥 내외부의 변화상을 전쟁과 식민지, 근대화, 산업화가 만들어 낸 결과물로 간주하고 그 시간과 기억의 층위를 렌즈를 통해 탐구해왔습니다.

▲일본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의 ‘삶의 극장’(2023)은 일본인의 시각으로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고려인의 삶을 조명한다.

우리들의 입장이나 시각이 아닌 보다 객관적 입장인 제3자의 시각으로 우리들과 이주민의 관계를 들여다본 작업이 있어 눈길을 끕니다.

더구나 일본인의 눈으로 중앙아시아(구 소련)에서 한국으로 이주해온 고려인들을 바라본 것이어서 그의 관점에 관심이 갑니다.

일본작가 고이즈미 메이로는 영상설치 작품 ‘삶의 극장’(2023)을 통해 고려극장 역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광주 고려인마을의 현재와 과거를 다루고 있습니다.

1932년에 설립된 카자흐스탄의 고려극장은 20세기 동안 고려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 착안하여 작업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광주 고려인 공동체에 속한 청소년 15명을 고려극장 사진 기록물의 출발점으로 삼아 작가와 워크숍을 갖고 연극적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작품엔 이들이 언어를 배우고 한국 사회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과달루페 마라비야의 설치 조각 작품 ‘질병 투척기’는 해부학 모형, 소라껍질, 징 같은 악기를 포함하여 작가가 ‘치유의 기계’라고 부른다.


조형적으로나 시각적으로, 또는 재료나 형체로 보아 찬찬히 돌아보는 즐거움이 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과달루페 마라비야의 설치 조각 작품 ‘질병 투척기’가 그것입니다. 가장 비엔날레 전시다운 작품이란 생각이 듭니다.

중앙아메리카의 곳곳에서 수집한 해부학 모형, 소라껍질과 징 같은 악기를 포함한 이 작품은 작가가 ‘치유의 기계’라고 부릅니다.

'치유의 기계'는 치료효과가 있는 진동음을 생성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회복의 상징이 된다고 합니다.

제4전시실은 나오려다 문득 발길을 멈추는 작품이 산티아고 야오아르카니의 작품 ‘위토토 세계관’(2022)입니다. 벽면에 걸린 대형 회화작품으로 다양한 신화적 스토리가 담겨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산티아고 야오아르카니의 작품 ‘위토토 세계관’(2022)은 벽면에 걸린 대형 회화작품으로 신과 신화, 아마존 도시풍경들이 버무려진 신기한 그림세계를 엿보게 한다.

이 작품은 무화과나무의 내피로 제작한 여러 장의 양피지를 이어서 천연염료로 채색한 회화입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신들이 등장하는 신앙체계나 물고기의 기원에 관한 신화적 서사, 그리고 아마존 우림에 스며든 도시풍경이 자아내는 동시대 환경 등 위토토 민족이 영위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채워져 있습니다.

다시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작품들은 주제와 소주제에서 던져주는 메시지처럼 작품 또한 편안함을 줍니다.

지금까지의 전시가 뭔가 지구촌 이슈와 문제를 강력하게 어필하려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전시는 그런 부분에서는 다소 거리를 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기사는 5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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