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은 사물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총체성을 통해 육화된 언어로 시를 형상화시키는 사람입니다.
총체성은 시인이 살아온 과정에서 형성된 정서와 사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시인만의 개성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초가 됩니다.
원초적 감각을 바탕으로 참신하고 도발적인 언어를 구사해온 정애경 시인이 신작시집『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시와사람刊)를 펴냈습니다.
◇ 에로티즘 통해 생명성의 본질을 묘파정애경 시인은 이전 시집 『발칙한 봄』에서 '입술, '매혹', '장미여관', '구애', '숨결', '절정' 등의 시어가 말해 주듯 에로티즘을 통해 생명성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예로부터 생명은 신적 존재만이 부여할 수 있다고 여겨왔습니다.
정애경의 생명성 탐구는 원초적 감각을 통해 생명성의 본질을 묘파하고, 생명의 아름다움과 환희, 그리고 생명의 상처와 강인함을 일깨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콩나물에서 '콘돔' '발기' '귀두' 등 성애와 관련된 에로티즘적 상상력과 발칙한 홍매화에서 '자궁' '홍조 띤 볼' '엷은 입술' '불 지핀 가슴'에서 보듯 '홍매화'가 꽃을 피우는 것을 "앞섶 풀어 헤치는" 여성으로 의인화함으로써 도발적인 언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에서는 원초적인 생명성 탐구와 더불어 위기에 처한 생명들의 안타까운 상황 제시, 생명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 견인시존재의 실존방식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 이른바 견인시 형식의 시편들은 매우 새롭고도 사유적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서정시의 본질이 절망에서 희망을, 불화에서 화해를, 그리고 유토피아를 향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면, 실존방식을 드러내는 정애경 시인의 성찰과 통찰에 관한 치열성은 '왜 시를 쓰는가?'에 대한 진중한 질문이 될 것입니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는 '모서리'의 의미를 통해 시인이 지향하는 실존방식을 오롯하게 보여줍니다.
나는 모서리가 없다
손톱 발톱 머리카락까지도
둥근 기둥을 따라 더듬어가면
부드러운 곡선에선 찰랑거리는 소리
그 속엔
해, 달 한줄기 둥글게 말아져 혈관에 고여
붉은 혈맥 뿜어 올린 나만의 꽃, 피웠다
가끔 덜 여문 언어가 튀어나와 모서리가 된 말,
이젠 다듬어져야 하는 저무는 나이,
둥글게 밀어 올린 허공에 둥글어져 버석해진
모서리 없는 고목의 휘어진 척추처럼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
-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
흔히 시인들이 시적 지향을 대표하는 시를 시집의 표제작으로 사용하는 경우처럼 정애경 시인의 시집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에서 시인의 시적 무게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나는 모서리가 없다"고 시의 첫 행에서 매우 간결하게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서리'는 앞에서 밝힌 것처럼 돌출된, 원만하지 못한 사람의 성품을 말합니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손톱 발톱 머리카락까지도 / 둥근 기둥을 따라 더듬어가면 / 부드러운 곡선에선 찰랑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둥글어 부드러운 곡선을 하고 있으로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곡선'과 '찰랑거리는 소리'가 의미하는 것처럼 성품이 원만할 때 가능합니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가끔 덜 여문 언어가 튀어나와 모서리가 된 말,"이 있다고 진술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더욱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시인의 고백처럼 "이젠 다듬어져야 하는 저무는 나이,"인 까닭입니다. 젊은 시절 튀는 피처럼 모서리가 된 말들을 내뱉어내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내적 성숙을 위해 "둥글게 밀어 올린 허공에 둥글어져 버석해진 / 모서리 없는 고목의 휘어진 척추처럼 / 내 몸엔 모서리가 없"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 '시와사람시학회 시목' 회원으로 활동강경호 시인(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은 시 해설에서 "정애경 시인이 지금까지 천착해 온 '사랑'을 주제로 한 시편들은 보다 시적 완성도가 높고 '말하는 방식의 새로움'이라는 시적 형식의 성숙함이 엿보인다 "고 평했습니다.
2022년《시와사람》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한 정애경 시인은 시집으로 『향기 나는 입술』, 『도둑고양이가 물고 간 신발 두 짝』, 『발칙한 봄』,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등이 있습니다.
<시와사람시학회 시목>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광양시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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