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2시 무렵, 수업이 끝난 동시에 기다렸던 점심시간이 시작되고 좁은 골목으로 학생들이 몰려듭니다.
광주광역시 북구에 위치한 전남대학교 경영대학 뒤편, 일명 '상대(전신 상과대학의 줄임말)'로 불리는 이 식당가는 저렴한 가격으로 한 끼 식사가 가능해 학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습니다.
식사를 하러 나온 학생들은 골목을 거닐며 설레는 마음으로 점심 메뉴를 고민합니다.
-'사랑합니다, 계좌이체는 힘이 돼요^^'
저렴한 가격대 식당이 이어진 백반 골목,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식당 중 한 곳인 A식당에는 점심시간 시작과 동시에 손님이 몰려들었습니다.
점심시간이 한창인 12시 20분 무렵, 50여 석이 마련된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 찬 모습입니다.
메뉴 1개당 평균 가격이 6천 원 수준인 이곳 식당은 전남대생뿐만 아니라 근처 직장인들도 자주 찾습니다.
가게 벽면 곳곳에는 큰 글씨로 붙여진 계좌번호가 눈에 띄는데, 이 가게에서는 카드 결제 대신 주로 계좌이체를 통해 결제가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음악학과에 재학 중인 김은수 씨와 친구들도 계좌이체 내역을 보여주며 식당을 나왔습니다.
점심시간 친구들과 주로 상대 식당가에서 식사를 한다는 김 씨는 "상인들이 카드 수수료가 떼이니까 계좌이체를 하는 걸로 안다"면서 "앉아서 계좌이체로 결제하고 바로 나가면 되니까 우리도 편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B식당, 메뉴판 옆에 '현금 결제는 이모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쓰인 종이에 계좌번호가 적혀있습니다.
대학생 변준영 씨는 "메뉴판 옆에 계좌번호가 붙어있으니 계좌이체를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어 불편하지만, 이런 걸로 따져 굳이 사장과 얼굴 붉히기 싫어서 계좌이체 한다"고 말했습니다.
-꼭꼭 숨어라~ '카드단말기' 보일라~
테이블 여섯 개가 손님으로 가득 찼고, 직원 두 명이 좁은 주방에서 쉴 틈 없이 음식을 내어옵니다.
평균 가격 약 4천 원대의 작은 분식점, 이곳에선 계산대 자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식사를 마친 학생이 계산을 하러 오자, 사장은 조리대 위에 놓인 쟁반 하나를 들어 올렸습니다.
[농협은행 123-4567 OOO]
김밥을 마는 조리대는 계좌번호가 적힌 계산대 역할도 하고 있었습니다.
올해 막 학교에 입학한 조경원 씨는 무심코 카드를 내밀었다가 "계좌이체!"라는 사장의 한마디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습니다.
카드를 거절당한 것이 불쾌해 보였지만 "사장님이 워낙 바빠 보이셔서 어쩔 수 없이 계좌이체를 했다"고 속내를 밝혔습니다.
C식당 역시 계산대에 카드단말기는 보이지 않고 계좌번호만 곳곳에 적혀있습니다.
계좌번호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학생들의 모습은 이런 상황이 익숙해 보입니다.
카드 결제를 요청하자 "계좌이체는 안되고?"라고 물으며 재차 현금 결제를 유도하더니, 잠시 후 어쩔 수 없다는 듯 선반 위에 숨어있던 카드단말기를 꺼냅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전남대 상대 뒤 백반·분식집 10곳을 둘러본 결과, 그중 9곳이 계좌이체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곳 대학가에는 여전히 카드를 아예 받지 않는 곳부터 계좌이체를 유도하는 식당까지 일명 '노카드존'이 형성돼 있습니다.
업주들은 은근히 현금 결제를 원하고 대부분의 학생들도 저렴한 가격을 이유로 계좌이체 해주는 '상부상조' 분위기입니다.
-계좌이체, 실제론 얼마나 큰 힘이 되길래?
계좌이체의 근본적인 목적은 카드 수수료보다 실제 신고하는 소득을 낮추기 위해섭니다.
이를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소득세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년 소득이 1,200만 원에서 4,600만 원 사이일 때, 자영업자에게 적용되는 종합소득세 세율은 15%로 명시돼 있습니다.
만약 현금 결제로 받은 돈을 모두 정상적으로 소득 신고하지 않고 1,200만 원 이하로 신고한다면 적용되는 세율은 6%로 절반 넘게 줄어듭니다.
예를 들어 한 식당이 1년에 2,000만 원의 매출을 냈을 때 산출 세액은 170만 원가량인데, 소득을 누락시켜 1,200만 원으로 신고한다면 세금이 63만 원으로 줄어 100만 원 가까이 이득을 보게 됩니다.
결국, 나라에서 가져가는 세금을 피하고 싶은 겁니다.
-무시할 수 없는 문제지만, 모두가 외면하고 있는..
상대 식당가에서 자주 식사를 하는 교직원 김건희 씨는 계좌이체 요구와 현금영수증 거부에 대해 "카드 결제 거부 같은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무시할 수 없는 문제가 맞지만, 자영업자들도 코로나를 겪어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점도 이해하게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식당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던 전남대생 배대욱 씨는 "일단 가격이 싸니까.. 다들 알면서도 계좌이체 하는 거예요."라며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가격이 싸니까', '자영업자들 코로나로 힘들었으니까' 등의 이유로 탈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나갑니다.
연 매출 2,400만 원 이상의 음식점은 반드시 신용카드 가맹점으로 의무가입 해야 한다는 소득세법에 따르면, 카드를 거부하고 계좌이체를 강요하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입니다.
광주세무서 측은 이 상황에 대해 "음식점의 카드 거부와 계좌이체 강요 행위는 소비자의 신고가 들어와야 할 수 있고, 정기적인 단속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답변했습니다.
규모가 작은 영세 상인들로부터 주로 발생하다 보니, 신고가 발생해도 권고 수준으로 처벌보다는 재발 방지에 중점을 두는 상황입니다.
현금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젊은 학생들이 대부분인 이곳 대학가에는 여전히 현금을 꺼내는 일이 일상입니다.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제공하는 자영업자를 위한 마음에서 눈감아 온 '노카드존', 과연 누구를 위한 상부상조일지 고민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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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로그아웃업주 입장에서는 세금 다내고 가격올려 받음 그리 세금이 올라가지는 않아요 그만큼 수익율이 좋으니..
착한가격 업소도 마찬가지로 대부분 현금결제위주이니
아마도 카드결제로만 착한가격 업소 유지하라 하면 전부다 없어질듯
풀기 힘든 문제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