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이 순환하듯 확 바뀐 관람 동선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가 열리는 비엔날레전시관은 모두 5개의 전시장이 있습니다. 이 전시관은 사무동 제문헌 쪽 정면에서 보면 3층 구조로 중앙에 통로를 놓고 좌우에 전시실이 있습니다.
1층은 좌측에 비교적 작고 낮은 전시공간이 있고 우측엔 수장고와 사무실, 회의실, 편의시설 등이 있습니다. 때문에 주요 전시는 2, 3층의 전시실에서 열려 왔습니다.
이번에도 2, 3층 4개의 전시실에 소주제별로 각 전시회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전의 전시와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눈에 확 띱니다.
지난 14회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전시장을 찾아 관람하고 취재했던 저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매우 참신한 변화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관람객 이동 동선을 180도 완전히 바꿔 놓은 것입니다. 입구의 위치, 전시회 시작 지점을 다른 곳으로 옮긴 겁니다.
그동안은 관람객은 우측 2층 전시장 뒤쪽의 입구로 들어와 좌측 1층 제5전시장을 마지막으로 거쳐서 퇴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출구나 다름없던 1층 좌측 전시장을 입구로 바꿔 관람객을 입장시킵니다. 과거 전시회와는 사실상 역순으로 이동 동선을 짠 것입니다.
작고 쉽지만 큰 변화로 보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전시회 구성에도 많은 변화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동선 바뀐 것만 보아도 비엔날레 전시가 달라졌다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실제로 가보면 알지만 입·출구를 남향 한 방향으로 맞춰 놓은 것입니다. 순환입니다. 전에는 북향 위에서 들어와 남향 아래로 빠져나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시작과 끝의 위치와 방향이 달랐습니다. 그렇다보니 관람객의 그 다음 발걸음의 행보와 방향도 다시 틀어지기 마련이었습니다.
지금은 시종일관하여 관람객들은 전시회를 보고 나면 전시장 전체에 하트모양의 발자국을 남기고 다시 광장으로 돌아 나온 느낌을 받습니다.
이숙경 예술감독이 이것을 의도한 것인지, 우연한 결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와 물 흐름의 순리를 깊이 통찰한 전시공학의 일면이 엿보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5개의 전시공간을 지나가는 내내 발길의 흐름이 주제처럼 부드럽다, 참 편하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비엔날레 정문에 들어서면 앞마당 광장을 통하여 곧바로 1층 왼쪽 전시장으로 들어갑니다. 멈추거나 오르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주제 정신이 출발 동선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 들어서며(제1전시장)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제목이자 주제인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는 도가의 근본 사상을 담은 ‘도덕경’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질성과 모순을 수용하는 물의 속성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숙경 예술감독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전환과 회복의 가능성을 가진 물울 은유이자 원동력, 방법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첫 번째 전시장은 대주제를 해석해 내는 소주제를 본격적으로 풀어내기에 앞서 보여주는 도입부로 ‘들어서며’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밝은 광장을 지나오며 확 넓혀져 있던 동공이 쏙 좁아집니다. 우선 어둡습니다.
대개 전시장 초입은 이번처럼 좁고 어둡게 만들어 관람객의 시선과 동작을 붙잡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품과 주제에 집중시키기 위해서지요.
그 동안의 전시는 첫머리에 강렬한 에너지를 뿜는 대형 작품이나 부스를 통해 강한 인상을 던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선을 잡아끌어 이슈를 뿜어내는 임팩트를 주려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번 전시는 물의 속성을 따라 천천히 조용하게 시작됩니다.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습니다.
전시장으로 막 들어가려는 통로의 ‘들어서며’ 안내문에는 도덕경 78장에 나오는 ‘유약어수’(세상에서 물이 가장 유약하지만, 공력이 아무리 굳세고 강한 것이라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를 인용하여 앞으로 전개될 작품과 전시의 방향을 소개해 줍니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첫 작품은 불레베즈웨 사와니의 ‘영혼 강림’(2022)입니다. 공간 전체를 한 작가의 한 작품으로 채웠습니다. 공간의 시작은 설치를 뒤쪽으로 영상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인공적 작품이 전시되는 전시장에 자연의 흙을 옮겨 놓은 것은 생명의 근원에 대한 메시지 아닌가 싶습니다. 흙은 물을 만나면 생명을 움트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심은 잔디는 시간이 지나면 자라나면서 점차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내며 변화하는 자연의 이치를 알려줄 것입니다.
또한 천장에는 주술적 문양과 색감의 줄들이 수직으로 매달려 있습니다. 그 사이로 S자 또는 U자형의 통로를 열어 관람객들을 유도합니다. 마치 강 하구의 뻘밭에 그려진 물길처럼 유연하게 흐르도록 설계하였습니다. 순천만이나 무안, 보성의 갯벌을 보듯 친숙한 이미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어둡고 침침하지만 차분한 감정으로 작품 감상을 시작합니다. 고요한 흐름으로 전시장을 통과하다가 고개를 들면 형형색색의 밧줄이 위와 아래, 하늘과 땅을 이어줍니다. 잠시 빗줄기 속인 듯, 자작나무 숲 속인 듯한 느낌을 줍니다. 죽은 자의 영혼과 산 자의 정신을 이어주는 수직의 기운을 강하게 풍깁니다.
이어 안쪽으로 공간이 확 넓어지면서 영상작품을 만납니다. 좌우측 벽면에 수직 화면과 함께 한가운데 수평으로 누운 워터스크린이 있습니다. 물 위에 영상을 비추는 기법적 발상이 주제와 근접한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화면 속에 등장하는 남아프리카 여성들이 부르는 듯한 노래 소리가 배경으로 깔려 애젖한 분위기 자아냅니다.
작가 시와니는 “영적 기운들은 내 작업의 본질로, 이를 통해 우리 몸과 정신이 어떻게 땅과 물에 결부되어 있으며 이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고 길러지는지 깨닫고자 한다”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던 선조들의 전통이 무너졌다고 보고 이를 회복하여야 하며 땅이 우리를 치유하는 힘을 선물로 주었다”는 깨달음을 전하려 합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작가 시와니는 ‘영혼 강림’과 함께 작가가 전통적인 치유자로서 훈련을 받으며 얻은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하는 새로운 장소 특정적 설치작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이 작가의 작품이 안겨주는 인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전시장을 빠져나옵니다. 여전히 아프리카 여성들의 노래 소리가 귓전을 맴돕니다.
오랜 시간동안 스며드는 부드러움으로 변화를 가져오는 물의 힘을 차분히 생각하게 합니다.
※이 기사는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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