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3도(道)에 걸쳐 몸을 누이고 있는 지리산은 장엄하면서도 포근한 모성을 품고 있습니다.
안개구름에 감싸인 천왕봉을 정점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산줄기는 능선 사이로 깊은 계곡을 이루며 영산의 위용을 자랑합니다.
◇ 지리산은 ‘자연생태의 보고’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지닌 지리산은 ‘자연생태의 보고’로 불리기도 합니다.
지리산에는 식물 1,600여 종이 자생하고 반달가슴곰이 85마리 이상 서식하고 있으며,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빨치산의 활동과 이로 인한 역사적 아픔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이러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은퇴 후 미뤄두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지리산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인이자 야생화 사진작가인 김인호 씨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광주광역시 태생인 그는 30여 년을 한국전력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한 후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전남 구례군 상사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를 만나러 지리산 입구 천은사로 드라이브를 나섰습니다.
그곳에서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구례들꽃사진반이 제3회 야생화 사진전을 열고 있었습니다.
가을 산사로 가는 길은 호젓하고 평화로웠습니다.
가을비가 대지 위에 촉촉이 흩뿌려졌습니다.
폭염에 바싹 마른 들판은 생기를 되찾은 듯 코스모스가 하늘거렸습니다.
천은사에 도착하니 김인호 작가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구례들꽃사진반은 김인호 회장을 비롯 민종덕, 이종복, 최수호, 이현숙, 김창승, 허혜인, 배영식, 김태영, 김성아, 한유경, 황영필, 박금숙, 안길열, 하기철, 문균열, 조은주, 강영옥 작가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이 마련된 보제루에는 회원들이 출품한 50여 점의 야생화 사진들이 관람객들의 시선을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작품마다에는 화사하면서도 청초한 자태를 뽐내는 야생화의 단아한 진면목이 담겨 있었습니다.
◇ 이상기후는 들꽃들에게도 큰 시련승복을 입은 비구니스님이 작품 속의 들꽃 하나하나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살펴보는 모습이 인상 깊게 느껴졌습니다.
김인호 작가는 “이상기후는 들꽃들에게도 큰 시련입니다. 노고단의 원추리는 점점 개체수가 줄어들고 그 자리를 뚱딴지같은 외래종들이 차지합니다. 사라지는 우리꽃들이 점점 늘어날수록 지리산, 섬진강의 들꽃 생태를 기록하는 일이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사진전 개최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구례들꽃사진반은 작품활동을 하면서 종종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희귀한 식물들을 찾아내 제보하기도 합니다.
올해는 설앵초, 기생꽃, 자란초를 땀 흘려 찾아냈으며, 밤에 빛을 내는 야광 화경버섯과 멸종위기종인 대흥란을 발견하여 지리산 식물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 것입니다.
◇ 피부가 괴사되는 ‘붉은 사슴뿔버섯’또한 만지기만 해도 피부가 괴사되는 ‘붉은 사슴뿔버섯’을 발견해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신고함으로써 안내표지판을 설치해 입산객들이 주의하도록 조치를 강구했습니다.
공학도인 그가 시와 사진에 꽂힌 사연은 1990년대 후반 어느 날 불쑥 지리산과 섬진강이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당시 하동화력발전소에 재직중이었는데 순천에 살면서 가까이에 있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박한 직장 생활 속에서 틈틈이 접하는 자연의 생생한 느낌을 인터넷카페에 글과 사진으로 올리면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야생화에 조예가 깊은 노동자 시인 김해화 씨를 만나 지리산 들꽃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명평화론자김인호 작가가 본격적으로 야생화에 심취하게 된 사연은 2000년 ‘풀꽃 세상을 위한 모임’에서 제6회 풀꽃상을 지리산 물봉선에게 수여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실상사의 몇분 스님과 함께 공동 수상한 것이지만 풀꽃에게 상이 주어진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정부의 지리산 댐 건설계획에 맞서 환경단체들이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벌이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명평화론에 김 작가는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김 작가는 우리나라 곳곳의 야생화를 보는 눈이 새롭게 달라졌습니다.
말 없는 꽃들을 마주하며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저절로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그가 펴낸 포토포엠 『꽃 앞에 무릎을 꿇다』(눈빛출판사)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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