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형사소송법상 허용되는 사유가 없는데도 임의로 영상 증인신문을 한 뒤 녹음 파일을 증거로 사용한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됐습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12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학 교수인 A씨는 학교에 허위 서류를 제출해 유령 조교 2명을 등록하고 조교 이름으로 장학금 742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검찰 입장에서 A씨의 혐의를 입증하려면 명의를 빌려준 유령 조교들의 진술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법정에 선 A씨가 장학금 247만 원을 허위로 수령한 B씨의 진술을 증거로 쓰는 것을 거부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경우 형사소송법에 따라 B씨를 법정으로 직접 불러 증언을 들어야 하는데, B씨는 해외 체류 중이라는 이유로 신문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1심에서 이 부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은 항소심에서 B씨에 대한 영상 증인신문을 요청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2020년 9월 화상 장치를 이용한 증인신문이 성사됐고, 증인신문 당시 녹음한 파일과 그에 대한 녹취록을 증거로 A씨의 혐의를 전부 유죄로 인정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증거재판주의를 위반하거나 증거조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판결을 파기 환송했습니다.
A씨에게 적용된 옛 형사소송법은 '피고인과 대면해 진술하는 경우 심리적인 부담으로 정신의 평온을 현저히 잃을 우려가 있는 자'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영상 신문을 허용했는데, B씨는 이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은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증인에 대한 증거조사 방식인 '신문'에 의하지 않고 증인으로서 부담해야 할 각종 의무를 부과하지 아니한 채 별다른 법적 근거 없이 증거조사를 한 다음 진술의 형식적 변형(녹취파일과 녹취서 등본)에 해당하는 증거를 검사로부터 제출받는 우회적인 방식을 취했다"며 판시했습니다.
이 같은 방식은 일종의 편법으로서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옛 형사소송법은 영상 재판을 엄격히 제한했으나 2021년 8월 코로나19를 계기로 일부 개정됐습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교통이나 건강 상태 등의 이유로 직접 출석하기 어려운 증인에 대해서도 영상 신문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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