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전방후원형 고분' 해석 분분.. 발굴·연구 절실

작성 : 2019-07-29 21:05:12

【 앵커멘트 】
일본의 역사 왜곡 소재로 활용되고 있는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형 고분' 관리 실태 보도해드렸는데요.

일본과의 관련성 때문에 뒤늦게 시작된 전방후원형 고분 학술조사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준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기자 】
kbc 탐사보도팀은 영산강 유역 전방후원형 고분을 연구한 주요 학자 30여 명의 논문을 분석했습니다.

연구자의 절반 이상은 전방후원형 고분에 묻힌 인물이 일본인이 아니라 한반도 남부의 토착 권력자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부 무덤 내부에서 백제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장품이 다수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2013년에 함평 표산 고분에서 출토된 중국계 항아리 시유도기 등은 백제 풍납토성의 유물과 유사한데,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것들입니다.

▶ 인터뷰 : 이정호 / 동신대학교 고고학 교수
- "마한으로부터 이어지는 세력이 이 지역에서 (대외 교류 등으로) 점차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 결과물이 이런 대형 고분들로 우리한테 보여주는 것이죠"

다음으로 많은 수의 학자들은 무덤의 주인이 백제가 파견한 일본인 관료로 보고 있습니다.

5~6세기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국력이 약해진 백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기 위해 일본의 힘을 빌렸단 겁니다.

특히 함평 신덕고분을 비롯한 일부 무덤에서는 백제 왕실에서 하사한 것으로 보이는 금동관 파편과 일본계 갑옷 파편 등이 함께 출토됐습니다.

▶ 인터뷰 : 이영철 / 대한문화재연구원 원장
- "그 사람들이 영산강 유역에 어떤 형태로든 와서 정착을 하고 활동을 하면서 죽음을 맞이했을 때 만들었던 무덤이다. 그래서 백제와 굉장히 밀접한 성격을 띄고 있는 무덤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분의 피장자를 일본에서 망명한 왜인으로 보는 주장도 있습니다.

5~6세기 당시 일본 내 전쟁에서 패한 큐슈 지역 세력이 교류를 이어오던 한반도 남부로 망명해 무덤을 축조했단 겁니다.

▶ 인터뷰 : 임영진 / 전남대 문화인류고고학과 교수
- "장고분(전방후원형 고분) 석실은 크게 두 계통으로 나뉘어 집니다. 하나는 북부 큐슈형 하나는 히고형. 북부 큐슈형이 (한반도에) 먼저 들어오고 히고형이 나중에 들어와요. 이게 일본 열도에서 이뤄졌던 정치적인 변화와 맥을 같이 해요"

관련 연구가 진행될수록, 일본이 한반도 남부 지배를 위해 전방후원분을 축조했다는 주장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 인터뷰 : 다카다 간타 /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교수
- "고대의 일본이 영산강 유역을 지배하기 위해서 (장군 등을) 파병했다고 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일본 학계에서는 거의 부정하는 의견이 대다수라고 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한반도 남부의 전방후원형 고분을 임나일본부설의 주요 근거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선 아직도 일부는 발굴조사 조차 이뤄지지 않은 전방후원형 고분의 연구가 더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kbc 이준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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