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멘트 】
고층 건물에서 불이 나면 비상계단은 신속한 대피를 돕는 생명의 통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광주의 한 빌딩 비상계단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돼 있어 통행이 어렵고 화재 위험도 높습니다.
이 건물 상층부에는 요양병원도 입주해 있어 비상시에 대규모 피해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조경원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 기자 】
광주 동구에 있는 17층짜리 건물입니다.
아래층에는 상가가, 위층에는 요양병원이 입주해 있습니다.
이 건물 비상계단을 올라가 봤더니, 에어컨 실외기가 버젓이 설치돼 있습니다.
건물 양쪽 비상계단에 설치된 실외기는 모두 19대로, 상가가 입주한 4층에서 10층 사이에 집중돼 있습니다.
상가 주인들이 설치 비용을 아끼려고 비상계단에 설치한 겁니다.
▶ 싱크 : 빌딩 관리소장(음성변조)
- "영세업자들이다 보니까 비용이 없다, 어렵다 보니까요. 차츰차츰 조치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좀 늦어졌네요"
전선이 오래되고 얼기설기 엉켜있어 합선이나 누전으로 인한 화재에 무방비상태입니다.
▶ 스탠딩 : 조경원
- "한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들이 통행을 방해하고 있고 누군가 실내에서 흡연한 것으로 추정되는 재떨이와 담배꽁초 흔적도 보입니다."
비상계단에서는 실외기 설치도, 흡연도 모두 불법입니다.
화재 시 피난시설로 쓰이는 비상계단에는 소방시설법상 장애물 설치가 금지돼 있습니다.
특히 상층부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400명에 가깝습니다.
화재 시 엘리베이터는 멈추고 비상계단으로 대피는 쉽지 않아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인터뷰(☎) : 공하성 /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 "휠체어 환자도 있고 침상 환자도 있고 재난 약자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계단과 복도에는 장애물을 모두 치우고 깨끗한 상태로 유지해야 합니다."
요양병원 측은 "해당 상가 소유주들에게 수년째 실외기 철거를 요구하고 있지만 강제할 권한이 없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광주 동부소방서는 해당 건물에서 지금까지 소방관련 지적사항이 보고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안전을 책임지는 광주 동구청은 취재가 시작된 이후에야 현장점검에 나섰습니다.
▶ 싱크 : 빌딩 관계자(음성변조)
- "구청도 나오고 소방서에서도 다 나왔어요. 조치 좀 해달라고 그렇게 왔대요."
실제 지난 3일 광주 북구 한 재활병원 빌딩에 입주한 업체에서 불이 나 환자 등 50여 명이 긴급 대피했습니다.
비상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내려와 참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 인터뷰 : 조태호 / 광주 A재활병원 관리팀장
- "(직원들이 환자를) 업고 이동하시거나 아니면 안고 이동을 하셔가지고 안전하게 비상계단을 통해서 대피를 하셨습니다."
비상계단에 실외기가 설치된 지 10여 년, 눈에 뻔히 보이는 위험을 외면하는 상인과 행정기관의 안전불감증은 대형참사로 이어지는 단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KBC 조경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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