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째깍 째깍'.
한 때는 남녀노소 누구나 차고 다닐 정도로 필수품이었던 손목시계.
요즘은 휴대폰으로 대체되면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채 멋쟁이들의 패션을 위한 악세사리로 기능이 바뀐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옛 추억이 그리워, 혹은 시계 자체의 감성에 이끌려 유행과 관계 없이 애정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20여 년간 광주광역시의 한 일간지에서 시사만화를 그리다가 현재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62살 유순식 씨.
그는 5년 전부터 오래됐지만 가치있는 '빈티지' 시계의 매력에 반해 취미 삼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모아온 빈티지 시계만 무려 70여 점.
이제는 어엿한 수집가가 됐습니다.
이들을 구입하는 데 쓴 비용이 자그마치 광주 시내 중소형 아파트 한 채 가격과 맞먹을 정도라고 합니다.
◇ 사연 깃든 아버지의 '롤렉스' 시계
그가 빈티지 시계에 혹하게 된 것은 40여 년 전 세상을 등진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스며 있습니다.
그의 부친은 교사였는데 1960년대 당시로서는 매우 귀한 '롤렉스' 시계를 차고 다니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카투사 1기 출신이어서 돈만 있으면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박봉이던 시절, 교사가 고급 명품 시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연년생인 삼형제가 동시에 군대에 입대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대가 끊길 것을 걱정한 할아버지는 세 자식 가운데 한 명이라도 군대에 가는 걸 막기 위해 긴급히 돈을 마련해 여러 경로로 '로비'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워낙 엄중한 전시 상황이라 뜻을 이루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다행히 전쟁이 끝나고 삼형제 모두 무사히 귀가하자 그 돈을 장남인 유 씨의 아버지에게 줬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긴 돈으로 유 씨의 아버지는 큰 마음을 먹고 '롤렉스' 시계를 구입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랫동안 시계의 존재를 망각했던 유 씨는 5년전 불현 듯 '롤렉스'가 머릿 속에 떠올랐습니다.
◇ '긁힌 자국' 마저도 정겨운 빈티지 시계
그리고 어머니께 물어서 장롱 속에 잠들어 있던 시계를 꺼내보니 운모로 된 유리는 뿌옇게 흐려있고, 가죽 스트랩은 보전이 힘들 만큼 삭아있는 상태였습니다.
전문점에 맡겨 완벽하게 수리한 후 다시 착용하게 되면서부터 빈티지 시계에 관심을 가지고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누군가의 추억과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게 빈티지 시계의 매력이죠. 그래서 긁힌 자국마저도 정겹게 느껴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손목시계 종류는 크게 태엽을 감아 작동시키는 기계식과 배터리로 움직이는 쿼츠(quartz) 2종류로 나뉩니다.
수집가들은 일반적으로 올드한 감성이 느껴지는 기계식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또한 기능과 사용목적에 따라 △정장시계(dress watch) △스포츠시계(field watch) △다이버시계(diver watch) △항공시계(aviation watch) △군용시계(military watch)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처음에 반대하던 가족들, 지금은 함께 즐겨
유 씨가 가진 시계 종류와 브랜드도 다양합니다.
그 중 대표적인 시계를 몇 종류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기능이 디자인을 지배하는 바우하우스 정신이 고스란히 반영된 독일제 노모스.
- 최초로 도버해협을 헤엄쳐 건넌 여성이 착용했던 다이버워치 서브마리너.
-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에 함께 한 익스플로러.
- 이탈리아 해군이 사용한 시계로 유명하며 유일하게 팬클럽이 존재하는 파네라이.
특히 이 파네라이 시계는 초창기 야광도료로 1급 발암물질인 라듐을 사용했는데, 이때 작업을 했던 소녀들이 이후 엄청난 후유증을 겪게 되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 달에 간 시계로 유명한 오메가 문워치와 스와치가 콜라보로 제작해 화제가 된 문스와치.
- 항공시계 GMT마스터.
- 하이엔드 브랜드 금통 바쉐론 콘스탄틴.
이 시계는 가격이 중형 승용차와 맞먹습니다.
유 씨는 집안에 쇼케이스를 마련해두고 6개월을 주기로 시계를 바꿔가며 감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처음엔 그의 호화스러운(?) 취미 생활에 불만이 컸지만 이제는 이해하며 함께 즐기는 동호인이 됐다고 합니다.
유 씨는 "시계는 인간이 쇠를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물건"이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계 생활'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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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유품 '롤렉스'에 끌려 수집 활동 시작
5년간 70여점..중소형 아파트 한 채 가격
"누군가의 추억과 애환 느낄 수 있어 매력"
5년간 70여점..중소형 아파트 한 채 가격
"누군가의 추억과 애환 느낄 수 있어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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