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극세종과학기지에서 1년 월동을 마치고 돌아온 오영식 월동연구대 연구반장은 "남극은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미 시험대"라고 말합니다. 남극까지 가는 길이 길고, 되돌아 나오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정반대에 위치한 세종기지로 향하는 여정은 유럽 또는 미국을 경유해 칠레 산티아고로, 다시 칠레 최남단 푼타아레나스로 이동한 뒤, 남극행 전세기를 타고 킹조지섬에 들어가는 방식입니다.
이후 세종기지까지는 육로 이동이 어려워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로 10km가량 들어가야 합니다. 이동 시간만 따져도 약 35시간이 소요됩니다.
"월요일 아침 비행기인데…토요일 밤 식당에 가방을 두고 왔다"그런데 '남극 입성' 직전, 오 반장에게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졌습니다.
푼타아레나스에서 대원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가 여권이 들어있는 가방을 식당에 두고 나온 것입니다. 하필이면 토요일이었고, 다음날 일요일엔 문을 닫는 식당이 많아 "월요일 아침 남극행 비행기를 못 타면 일정이 꼬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오 반장은 "영사관도 없는 곳이라 재발급을 받으려면 산티아고까지 가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려면 또 비행기를 타야 하고 비행기를 타려면 여권이 필요하다"며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결국 그는 다음날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홀로 남아 식당이 여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다행히 가방을 찾았습니다.
"그날 새벽엔 한숨도 못 잤다"는 말이 나올 만큼 아찔했던 순간입니다.
"짐이 바다에 빠졌다"…노트북·전자기기 '전멸'고비는 한 번 더 있었습니다.
킹조지섬에 도착한 뒤 고무보트를 타고 세종기지로 들어가던 중, 파도가 심한 구간에서 캐리어가 바다로 빠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무전기가 소란해지더니 "캐리어가 다 빠졌다"는 말이 들렸고, 다른 보트까지 동원해 몇 시간 동안 건져 올렸습니다. 일부는 다음날, 며칠 뒤에야 찾은 것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바닷물에 흠뻑 젖은 캐리어 속 물건들이었습니다.

오 반장은 "1년 생활 짐이 들어 있던 캐리어가 바닷물에 완전히 담가져 노트북 같은 전자기기들은 못 쓰게 됐고, 기념품도 못 쓰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남극'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많은 것을 버리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18명이 한 건물에 1년 동안 있다보면"

세종기지 월동대는 총 18명으로 대장·총무(극지연구소 직원)를 중심으로 연구반 6명, 총무반(요리사·의사·통신대원 등), 유지반(전기·발전기·기계설비·중장비·해상안전 등)으로 구성됩니다.
오 반장은 "들어가서 한두 달은 '우리 차대 사람 너무 잘 뽑았다'고 큰소리친다"면서도, 하계 기간(12~2월)이 끝나 방문 연구원들이 떠나고 18명만 남아 기지가 조용해지면, 식성·말투·대화 방식 같은 사소한 차이에서 작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남극 생활의 고비는 종종 '대형 사건'이 아니라 '작은 결핍'에서 시작됩니다.
오 반장은 10년 전과 비교해 중간 보급이 줄어든 체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예전엔 식재료가 많아 남는 물량을 정리하는 게 일이었다면, 이번에는 "거의 딱 맞게끔 보급"되는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계란입니다. "아무리 잘 보관해도 6개월 이상 어렵다" 보니 여름쯤(6~7월)이 되면 계란이 떨어지고, 채소도 줄어듭니다.
그러면 누가 더 많이 먹었는지 같은 사소한 서운함이 생기고, 그게 대원들 사기에도 영향을 준다고 했습니다.
"보고 싶다"는 말을 일부러 삼킨 이유…남극의 끝은 결국 가족

오 반장은 남극에 있는 동안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났습니다.
그 시간이 한국에 있는 아들과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습니다.
오 반장은 아들에게 "보고 싶냐"는 말을 잘 꺼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이 더 힘들어질까 봐서였다고 털어놨습니다.
[되돌아본 남극 이야기(下)]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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