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멘트 】
2천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충장로'는 광주의 상업과 금융, 문화의 중심이었는데요.
호남 상권 일번지 '충장로'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전시회가 열려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임소영 기잡니다.
【 기자 】
지금의 광주제일고 자리에 서있던 누각인 '절양루'. 충장로의 시작점인 이곳은 조선시대 의병들의 출정지이기도 했습니다.
충장치안센터 위치인 공북문을 거쳐, 광주우체국 자리의 객사 '회경루'까지 이어진 거리가 바로 지금의 충장롭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11년, 지금의 충장로2가에 들어선 광주의 첫 은행 농공은행.
1920년 민족자본가들이 설립해 충장로 3가에 본점을 설치한 호남은행.
광주의 유일한 번화가였던 충장로는 일제강점기부터 금융의 중심이었습니다.
일본상점들이 빼곡했던 충장로에 한국인 상점이 등장한 건 1920년대.
충장로 1가부터 3가까지는 일본상점이, 4가와 5가엔 한국상점이 집중됐습니다.
1931년 충장로에도 전기 가로등이 불을 밝혔고, 상점들의 네온사인으로 충장로의 밤거리는 화려해졌습니다.
▶ 인터뷰 : 조유신 / 광주시 운암동
- "일제 강점기니까 간판들이 다 진짜 일본어네요. 저희 어릴 때는 그런 모습을 못봤으니까 조금 놀랍네요."
▶ 인터뷰 : 정일재 / 광주시 문흥동
- "(전시회를) 둘러보면서 옛날 생각도 나면서 너무나 그리웠던 추억들이 생각나고."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이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까지 충장로의 역사와 문화를 총정리했습니다.
각종 문헌과 유물, 조선후기 이후 사진 등 130여 점의 자료과 함께, 충장로의 옛 극장과 우다방, 터미널 등을 재현해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 인터뷰 : 김신혜 / 광주역사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 "(조선시대에) 북문거리를 형성했을 정도로 중심가였다는 것, 그 이후에 충장로가 상권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인 맥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천년대 중반 전남도청이 남악으로 이전할 때까지 화려했던 호남상권의 중심 '충장로'의 지난날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회는 오는 12월 12일까지 이어집니다. kbc 임소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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