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탐·인]‘전라도 옹기장인’ 이학수 명장(下)

작성 : 2023-04-28 08:00:02
“물레에 앉으면 바늘 구멍만 한 행복 느껴”
'채바퀴타래기법·천연유약’ 사용 큰 특징
성형 작업·가마에 구울 때 가장 정신 집중
서민 사랑받는 용기로써 사료 가치 높아
▲옛날 가마의 불때기는 불대장이 맡아서 했으나 지금은 직접 밤낮없이 불을 지켜야 옹기를 얻을 수 있다.

◇ 수작업으로 빚는 전통미감


▲미력옹기의 전통 일자형 가마는 전라도 야산의 구릉을 따라 23미터 길이의 경사를 불길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도록 설계했다.
“옹기를 서민의 그릇 정도로 낮게 보고 옹기 기능도 저평가하려는 자기하는 사람들도 막상 직접 작업을 하려고 하면 쉽지 않아요. 일단 옹기는 크고 자기는 작기 때문에 기술이 다르지요. 이제 와서는 전통 옹기의 기능이 대단하다고 인정합니다. 대부분 자기는 끊어서 만드는데 옹기는 단번에 그릇을 완성하거든요.”

이학수 명장은 미력옹기만의 맛과 멋을 지키기 위해 고집하는 것이 바로 수작업입니다. 지금까지도 거의 모든 과정을 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고집스런 가계의 전승내력은 미력옹기의 ‘전통미’를 뒷받침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미력옹기 전통미의 기본은 역시 재료와 기법으로 요약됩니다. 전라도 땅에서 난 흙과 유약, 불로 남도인의 지혜와 기능이 숨결을 맞대어 만들어 집니다. 특히 ‘채바퀴타래기법’과 ‘천연유약’을 쓰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흙 속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께끼질에 이어 메질을 하여 잘 정제되고 다져진 흙을 바닥에 메치는 판장질을 통해 널빤지처럼 흙을 폅니다. 그 흙 몸체를 물레에 올려놓고 발로 돌리며 작업을 하게 됩니다.

채바퀴타래기법은 전남 지방 특유의 옹기제작기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흔히 판장질이라고도 하는 이 방식은 그릇의 벽을 세우는 데 있어 수레와 도개로 흙을 쳐대고 판을 둥글게 펴면서 모양을 잡아가는 방법입니다.

이 방식은 일본 등 동남아에서 널리 사용되는 기법으로 미력옹기가 ‘원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반면 경상도·충청도 등지에서는 흙덩어리를 길게 말아 둥글게 층층이 쌓아 가며 옹기를 짓는 둥글타래기법을 사용하는 것과 다릅니다.

일단 물레 위에서 작업이 끝나면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서 사흘정도 말리는 과정을 거치고 가마에 들어가기 전 유약을 바르게 됩니다.

이학수씨가 철저히 천연유약을 바르는 것도 자기만의 방식입니다. 이것은 ‘숨쉬는 미력옹기’를 만들기 위해 꼭 지키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소나무 재와 낙엽이 쌓여 썩은 부엽토를 섞은 잿물 속에서 옹기를 한 바퀴 정도 굴려 유약을 바르는 것입니다.

이 전통가마도 전라도 야산의 구릉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20~30도 정도의 경사를 유지하며 23미터 길이로 불길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일단 가마에 불을 때면 7일 동안 계속됩니다. 40~50도의 피움불로 시작해 100도 정도의 돋굼불, 마지막 1,200도까지 올라가는 큰불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칩니다.

“옹기작업을 할 때 물레에서 성형할 때와 가마에서 굽기를 할 때 가장 정신을 집중합니다. 옛날에는 작업 과정이 분업화돼 있었습니다. 옹기장과 불대장, 뒷일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는데 지금은 흙을 버무리고 만들고, 불 때고 하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합니다. 장작 가마 불때기는 엄두도 내지 못해요.”

▲이학수 명장은 전라도 땅에서 난 흙과 유약, 불로 남도인의 지혜와 기능이 숨결을 맞대어 옹기를 만들어 낸다고 말한다.

불 때는 기술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단계라는 것입니다. 불꽃의 크기와 색깔, 기물들의 붉기를 찬찬히 살펴가면서 전통적 기능을 따라하는 것이라 예민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 만 번의 손길과 긴 시간을 거쳐 옹기는 태어납니다.

◇ 흙에서 찾아 낸 자연미

▲옹기는 날숨과 들숨을 쉬며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자연의 일부로 여겨진다.
이학수 옹기의 미감은 자연미입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을 만지다, 다시 흙 속으로 돌아간다”는 그의 말에 이 모든 것이 함축돼 있습니다.

흙의 성질을 거스르지 않고 최소한의 인간 감성을 불어넣는 옹기에 깃든 미의식은 눈으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옹기는 그 유래와 역사가 말해주듯 한민족 도자사의 중심에 있어 왔으며 서민들의 사랑받는 용기로 널리 사용돼 사료적 가치 또한 다른 기물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할 것입니다.

가장 자연에 가깝게 만들어져 색이나 형태로 단조로울 뿐만 아니라 깨져 수명을 다한 이후에도 다시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옹기는 집밖 장독대에 앉아 햇볕과 눈, 비, 오르내리는 기온 등 자연을 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스스로 날숨과 들숨을 쉬며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자연과 다름이 아니지요.

미력옹기에서 나는 전라도 항아리는 어깨선이 완만하고 윗배가 부른 역삼각형 골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미력옹기는 두께가 얇습니다. 얇을수록 좋은 옹기라고 평가합니다.

이처럼 옹기는 색깔과 형태에 있어 단순하고 단조롭습니다. 이는 곧 숲과 울타리, 뜰 안에 드는 양지쪽 장독대 주변의 자연환경과 잘 조화되는 자연 속의 아름다움을 자아낸다고 하겠습니다.

◇ 동시대 감성을 깨우는 창조미


이학수씨의 미력옹기의 아름다움에서 창조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승된 공예의 경우 대부분 ‘스승 따라하기’가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학수씨는 시대변화를 읽어가며 자신만의 손길을 통해 드러나는 새로운 ‘이학수 옹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학수 명장의 작업실 입구에 걸려있는 이 문구는 5·18광주민중항쟁에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처남이 쓴 것으로 흙을 다루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일깨워준다.

미력옹기도 전라도 옹기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서도 세상의 변화를 물리치긴 어렵습니다. 그래서 서서히 옹기의 재탄생을 줄곧 도모해 왔다고 합니다.

전통기법과 방식은 큰 장점이고 경쟁력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덧붙여 동시대인의 감성을 불어넣는 조심스러운 작업을 해 나가는 과정이 이학수 옹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학수씨는 과거와 현대, 미래를 합쳐 옹기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전통을 철저히 담보하지만 소품을 중심으로 현대적 세련미와 디자인 감각도 일부 소품 등에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학수씨의 창조적 미감은 실용성과 부합한 것도 특징으로 꼽힙니다. 옹기란 장독대를 지키며 간장과 된장, 고추장, 김치 등 한국의 전통 음식을 저장, 보관하던 용기입니다.

전라도 사람이 전라도 흙과 유약으로 전라도 방식으로 옹기를 만들면서도 장식용에 그치지 않은 점은 성과로 인정할 만합니다.

옹기가 우리들의 생활 속에 파고들도록 형태나 크기를 디자인하여 전통과 현대가 버무려진 옹기를 창출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옹기와 함께 살아온 인생이 행복하다는 이학수 명장은 “정부에서 전통 옹기의 전승에 적극 나서주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국 옹기의 메카’의 꿈

“흙은 참으로 정직합니다. 흙은 빚는 작업이 좋아서 16주 과정의 ‘옹기학교’에 참여하는 일반인들이 벌써 19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주부들이 많이 오시는데 직접 만들어 생활용기로 사용하기 때문에 호응이 좋습니다.”

이학수씨에겐 희망도 있습니다. 우리 것을 지키고 이어가는 데 ‘미력옹기 10대 장인’의 탄생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남 1녀를 둔 그는 미국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자녀들이 언젠가 다시 귀소(歸巢)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도 옹기인생을 사는 것에 대해 너무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 장작가마 명인이 전국에 10여 명 정도 있는데 1세대 몇 분이 돌아가시면 옹기전통의 맥이 사라지고 축소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래도 물레에 앉으면 잡념과 고민이 사라져 바늘 구멍만 한 행복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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