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 등으로 표현한 박유하(66) 세종대 명예교수를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26일 대법원 3부는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에게 벌금 1천만 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습니다.
지난 5년 11월 검찰이 사건을 기소한 지 8년, 2017년 11월 상고가 접수된 지 6년 만에 나온 결론입니다.
대법원은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각 표현은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고,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박 교수는 2013년 8월 출간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매춘'이자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고, 일본 제국에 의한 강제 연행이 없었다고 허위 사실을 기술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015년 12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2심 법원은 검찰이 기소한 35곳 표현 가운데 11곳은 허위 사실을 적시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게 맞는다며 벌금 1천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2심 법원이 문제 삼은 표현은 "강제연행이라는 국가폭력이 조선인 위안부에 관해서 행해진 적은 없다", "위안부란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 안에 있던 여성들" 등입니다.
박 교수가 "'그런 부류의 업무에 종사하던 여성이 스스로 희망해서 전쟁터로 위문하러 갔다'든가 '여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위안부를 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다'고 보는 견해는 '사실'로는 옳을 수도 있다"고 쓴 부분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우선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기본적 연구 윤리를 위반하거나 해당 분야에서 통상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 학문적 과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위의 결과라거나 논지나 맥락과 무관한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학문적 연구를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기준에 따라 박 교수가 저서에 쓴 표현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의 적시'로 볼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단입니다.
대법원은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춰 보면 박 교수가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했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맥락이나 집필 의도 등에 비춰 보면 박 교수가 조선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부인한 것은 아니며, 제국주의나 가부장제 질서 등 구조적 문제가 기여한 측면이 있으므로 일본의 책임에만 주목해 갈등을 키우는 것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주제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쓴 표현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또 "일본군 위안부의 전체 규모나 조선인 비율에 비춰 조선인 위안부를 구성원 개개인이 특정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이거나 균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 각 표현이 피해자 개개인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의 진술에 해당한다고도 보기 어렵다"며 "'공적 강제연행'에 관한 표현은 학문적 개념 포섭을 전제한 것으로 사실 적시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해당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해야 한다"며 "(박 교수가) 통상의 연구윤리를 위반했다거나 피해자들의 자기결정권,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이들의 존엄을 경시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학문적 표현으로 인한 명예훼손죄를 판단할 때 '사실의 적시'라고 인정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법리를 최초로 설시한 판결"이라며 "학문적 표현물에 관한 평가는 형사 처벌에 의하기보다 원칙적으로 공개적 토론과 비판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선언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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