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이 새로운 생(生)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산티아고'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성 야고보 사도의 스페인식 이름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 800㎞에 이르는 '프랑스 길'이 바로 '야고보 사도의 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잃어버린 삶의 방향성, 묵은 인생의 구심력을 벗어나 자신만의 목표를 찾아 나서는 일은 구도자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 가슴 뛰는 일을 찾아 나선 순례길
그래서 저마다 갖가지 사연과 소망을 품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여행기 이상의 뭉클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어 직장을 나온 박광영 시인이 여행 에세이 『산티아고, 햇빛과 바람과 환대의 길을 가다』(문학들 刊)를 출간했습니다.
그는 30여 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삶이 꿈꾸었던 방향과 다르다고 여겨 정년 6년을 남기고 명퇴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봄, 순례자로 길을 떠났습니다.
이 책은 그가 명퇴하고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의 기록입니다.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꿈을 다시 찾기 위해 홀로 배낭을 짊어지고 떠난 43일, 900여 ㎞ 여정에서 만난 풍경들이 시인의 감각적인 문장으로 재탄생했습니다.
◇ 소중한 순간들 다시금 마음에 되새겨
프랑스 생장 피에드포에서 출발해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후, 다시 유럽의 땅끝이라 불리는 피스테라, 무시아까지의 여정이 시인의 글과 직접 찍은 사진들과 함께 담겨 있습니다.
사모스 수도원을 향해 걸어가는 길에서 스페인 땅에 스며드는 봄의 향취를 맡을 수 있었다. 산골 지역이라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지만 다가오는 봄기운을 막을 수 있는 겨울 장사는 없다. 여울이 흐르는 옆으로 나뭇가지마다 연초록빛 버들강아지가 물오른 기운을 자아내고 있다. 봄은 여리게 시작한다. 봄을 폐 깊숙이 들이마시고 다시 봄을 내뱉는다. 수도원 내부를 혹시 구경할 수 있을까 싶어 담장을 따라 돌아간다. 한참을 걸어 수도원의 입구로 보이는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돌계단에 앉아 수도원 담장과 건물의 외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세월의 이끼들이 돋아 있다. 푸른 이끼들 사이에서 오래된 유적처럼 조그맣게 뻗은 작은 풀잎과 풀꽃들. 적적한 풍경 속에서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그렇게 내 시간들을 과거로 흘려보낸다.
- 사모스 수도원 가는 길 中
이 책에서 시인은 다른 여행자들과의 만남, 여러 도시와 마을을 지나면서 머물렀던 알베르게 관리인들과의 주고받는 대화와 따뜻한 환대 속에서 소소한 일상을 떠올리고,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금 마음에 되새기게 됩니다.
천년의 길이다. 순례자가 지향하는 세상의 땅끝은 이렇게 눈으로 볼 수 있는 물리적인 형상만을 뜻하진 않을 것이다. 순례자, 그들의 마음속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땅끝이 평생 자리 잡게 될지도 모른다. 유형의 땅끝과 달리 순례자의 마음속에서 '땅끝'은 다시 태어나고 자란다.
- 무시아의 돌십자가 中
허형만 시인(전 한국가톨릭문인협회 이사장)은 추천사에서 "황홀한 아침 햇빛, 바람, 성당, 강과 다리, 청설모, 싹 틔우는 밀알, 시인 백석을 생각나게 하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걷거나 혼자 걸은 900여 km 43일간의 순례길은 신비와 경이로움, 감탄과 환희, 배려와 감사와 기도로 충만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고 전했습니다.
◇ 자기를 회복하는 여정을 담백하게 기록
또한 전성태 소설가(순천대 교수)는 "43일, 900킬로미터의 여행기에는 자유인으로서 자신을 온전히 감각하고 온 한 사람의 여정이 벅차게 그려져 있다. 자기를 회복하는 여정을 담백하게 기록한 이 여행기는 누구든 자기 생을 밀어 동참하게 하는 문학적 인력이 강하다"고 평했습니다.
광주에서 태어난 박광영 시인은 20대에 순천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터를 잡았습니다.
2014년 『시와정신』으로 등단, 시집 『그리운 만큼의 거리』, 『발자국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 수필집 『제대로 가고 있는 거야』를 출간했습니다. 2020년 말에 명퇴 후 문학과 귀농에 관심을 두면서 시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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