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정윤천 시인 "인생, 저마다의 나비들을 손아귀에 모아 날려 보내는 것"(2편)

작성 : 2024-11-03 08:30:02
부침이 많았던 인생, 유랑에서 벗어나고 싶어
시집 '백만년의 사랑' 해외 출간 위해 영역 작업
광주·서울 두 군데 문예지 편집책임 맡아
시집 10권 내는 게 목표, '원고지 시 쓰기' 전개
[남·별·이]정윤천 시인 "인생, 저마다의 나비들을 손아귀에 모아 날려 보내는 것"(2편)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강의하는 정윤천 시인 [정윤천]

30여 년 시작(詩作) 생활을 이어오는 동안 정윤천 시인에게는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굽이치는 삶이 펼쳐졌습니다.

최근에는 수 년 동안 운영해오던 전남 화순 도곡의 복합문화공간을 접고 잠시 휴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광주와 서울 두 군데 문예지 편집 책임을 맡고 있으며, 시집 '백만 년의 사랑'에 대한 해외 출간을 목표로 영역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와 인터뷰를 통해 최근 근황과 시적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복합문화공간 정리하고 휴식중
- 그동안 머물던 화순에서 활동을 정리했다고 들었는데.

"고향인 전남 화순에 우연찮게 건물과 토지가 인연이 돼 카페와 전시장, 강의실을 갖춘 3천평의 복합문화공간을 개소해 수 년 동안 운영을 해오다가 현재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손을 뗀 상태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내상이 깊었던 탓도 있었습니다."

▲2024 계간문예지 편집자 대회에서(맨 왼쪽) [정윤천]

- 근래 문학활동은?

"개인 창작활동을 위주로 작품 발표를 이어가고 있으며, 광주에서 발행하는 시 전문잡지인 『시와 사람』의 편집주간과 서울에서 발행하는 시와 문화를 배경으로 한 『시의 시간들』 이라는 문예지 대표 편집인을 맡고 있습니다. 아울러 광주 사직도서관에서 주 1회 시 창작 강의를 진행하는 한편 외부 강의활동도 참여하는 중입니다."

- 30여 년 문학인생을 되돌아 본다면.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부침이 많았던 인생입니다. 그것들이 모이고 또 흘러가서 작금 한 시인의 여정이거나 세계관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겠지요. 곁가지들을 치고 나니 유랑의식과 연민의 마음 그리고 천진무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사람으로 정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첫눈' 카페에서 정호승, 김용택 시인 등과 함께(맨 왼쪽이 정윤천 시인) [정윤천]

◇ 귀와 눈과 입들이 좀 더 순해지기를
칠순이 차츰 가까워져 가는 나이에 들다보니, 엉뚱한 노욕이거나 지나친 집착으로부터 해배(解配)되는 자아를 쌓아나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손과 발 그리고 귀와 눈과 입들이 좀 더 순해지거나 깊어 가기를 소원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람들의 인생은 모두 다 저마다의 나비들을 손아귀에 모아 그립거나 눈물 나는 지점에서 손바닥을 활짝 펴 날려주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현실의 각축에서 한발 비켜서는 일이야말로 모든 시인의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문학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생각은?

"나는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시의 외향적 문제보다는 시가 내재한 정신적인 견인력에 더 주목하는 셈입니다. 내게는 가장 의미 있는 선배 문인 세 분이 계시는데, 첫 번째는 신경림 시인입니다. "못난 놈들은 얼굴만 보아도 반갑다" 이 시구는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자신의 시를 발표하는 정윤천 시인 [정윤천]

◇ 시가 내재한 정신적인 견인력에 주목
단 몇 개의 글자 속에 수백 년을 이어온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삶의 태도와 몸짓의 무늬가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이 김수영 시인인데, 그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작품에서 "나는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조그만 일(갈비탕에 갈비가 적게 들어있는)에 분개하는 자신을 토로합니다.

그리하여 조선 오백년 왕국은, 한 시인에 의해 일거에 '음탕한' 거처로 발각됩니다. 시의 용맹성이자 승리의 순간입니다.

세번째는 김사인 시인으로 어느 날의 노숙자를 지나쳐 와서 그날 밤중에 시를 씁니다. "너를 팔아서 아내를 안고 따뜻한 집을 이어 왔다"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시인만이 가능한 연민의 부활이자 인간의 순간입니다.

저도 그렇게 시의 내재율과 내간체를 꿈꾸어 보기도 하는 지점입니다.
◇ 시가 지닌 본래의 문장 회복에 노력
- 요즘 문학적 관심사는?

"언제부턴가 한국문학이 그중 시라는 장르가 내용은 없고 외관이거나 개별성에만 치중되는 경향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건 거대한 추세이니 누가 저항하거나 거스른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지요. 그래서 조그맣게나마 제가 주관하는 문화잡지에서 '원고지 위에 쓰는 시'운동을 벌여 나가볼 계획입니다. 문명의 이기인 디지털 사진과 결합하는 '디카시'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시가 지니는 본래성의 문장 회복에 대한 밑그림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잘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기도 합니다."

- 앞으로 작품 혹은 인생 계획은?

"제가 낸 시집의 권수를 열 권에 맞추는 게 최대의 계획입니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백만 년의 사랑'에 대한 영역시집이 영국이나 미국에서 출간되는 일이 최대의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시인의 자리에 조용히 가서 앉아 보려는 마음 역시 중요한 인생목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전국논개 시낭송 퍼포먼스대회에서(오른쪽이 정윤천 시인) [정윤천]

-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금의 한반도는 동서로 남북으로 계층 간으로 너무 첨예하게 대립을 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너무 표피적인 관심사이거나 이슈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호들갑들 역시 커다란 문제입니다. 모두 다 정치권력의 투쟁과 자본과 문화 독점욕에서 비롯된 이해타산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각설하고, 이 쓸쓸한 조락의 계절에 마음의 본래심을 회복하는 데 유용한 한 편의 시와 한 권의 양서들을 찾아내어 읽었으면 합니다."

여기에, 저의 자작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너에게로 닿기까지 백만 년이 걸렸다
백만 년의 해가 오르고
백만 년의 달이 기울고

백만 번의 강물이 흘러갔다

사람의 손과 머리를 빌려서는
잘 헤아려지지 않을 지독한 고독의 시간
백만 년의 노을이 스러져야 했다

백만 년 전에 함께 출발했을지 모를
산정의 별빛 아래
너와 나는 오래서야 도착하여 숨을 고른다
지상의 불빛들이
하나둘 어두움 속으로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하였다

하필이면 우리는 이런 비탈진 저녁 산기슭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서로를 알아보게 되었는가

여기까지 오는데 백만 년이 걸렸다

잠들어가는 지상의 풍경처럼 우리는 그만 멈추어도 된다
더 이상의 빛을 따라가야 할 모든 까닭이 사라졌다

만 번쯤 나는 매미로 울다 왔고
만 번쯤 나는 뱀으로 허물을 벗고
만 번쯤 개의 발바닥으로 거리를 쏘다니기도 했으리라

어디에서는 소나기로 태어났다가
어디에선가는 무지개로 저물기도 하였으리라

물방울들이 모여 물결을 이루는
길고도 반짝이는 여정을 우리는 왔다

태어난 자리에서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위해 날아올랐던 새들처럼
날고 또 날아서 여기까지 왔다

서로에게 닿기까지 백만 년이 걸렸다.

(시 '백만 년의 사랑'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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