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에 맞이하는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있어 눈길을 끕니다. 이 나라의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극복하자는데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구와 광주 사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한 모임이라서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구와 광주에서 출범한 ‘동서미래포럼’이 그것입니다.
‘동(東)’과 ‘서(西), 영남과 호남이 손을 맞잡고 보다 나은 미래로 나가보자는데 의기투합을 한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 는데 인식을 같이한 흐름일 겁니다.
무엇보다 이 작은 나라와 똑같이 생긴 국민들 사이가 정치적으로 늘, 항상 이분법적 분열주의로 치닫는 모습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생각 있는 분들’이 모여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호남의 갈등 상황을 흔히 정치적 산물로 지적합니다. 지적질에 능한 사람들은 그저 맨날 지적만 합니다. 자신이 들춰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는 게 모두에게 필요한 건지 대안이나 답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나는 지적할 테니 너희들끼리 해결해라’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설득력이 없습니다.
좀 더 센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정치권이 정신 차리고 바뀌어야 한다”고 악을 씁니다. 그건 정치인들의 속성을 모르고 하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늪에 빠진 것처럼 지역갈등의 골은 국민 정서와 상관없이 깊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런 상황을 스스로 헤쳐 나가 보자며 나선 ‘동서미래포럼’의 행보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 ‘달빛동맹’으로 가까워진 대구-광주
대구와 광주에선 요즘 ‘달빛동맹’이란 말을 곧잘 씁니다. 대구광역시와 광주광역시가 영·호남의 지역감정 해소 차원에서 서로 교류 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자고 맺은 협약입니다.
이것은 삼국시대 ‘나제동맹’을 연상시킵니다. 5세기 고구려의 장수왕이 남진정책을 추진하자 큰 위협을 느낀 신라와 백제는 이른바 ‘나제동맹’을 맺어 이 위기를 극복하려한 역사가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양 지역이 힘을 합쳐야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다는 상징성을 보여줍니다. ‘달빛동맹’은 ‘달’구벌과 ‘빛’고을의 앞 글자를 따서 지었습니다.
본격적인 사업은 2009년 대구와 광주가 의료산업 공동 발전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대구의 2·28민주운동과 광주의 5·18민주화운동 행사에 서로 오가며 교류의 폭을 확대해 왔습니다.
지난 2020년‘코로나19’ 사태로 대구지역 상황이 악화되자 광주광역시가 병상나눔과 의료지원단 파견 등 대구돕기를 실천한 것은 전 국민과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대구광역시도 광주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자 마스크 1만 장을 지원하여 화답하는 등 양 지역이 훈훈한 미담을 펼쳐보였습니다.
지금은 대구시와 광주시가 ‘2038하계아시안게임 대구·광주 공동유치’를 선언하고 2021년 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동서 내륙의 거점 도시 상생발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대구와 광주 놓고 이야기할 때 자주 오르내리는 말들이 있습니다. ‘달빛동맹’을 비롯 ‘대구-광주88고속도로’, ‘2·28-5·18’, ‘이인성-오지호’, ‘라이온즈-타이거즈’, ‘보수-진보’그리고 ‘박정희-김대중’입니다.
현실로 나타난 정치적 성향은 선거에서 정반대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국 정치의 축소판이고, 기본 축이며, 양분된 영역으로 표시됩니다.
오죽하면 “정치와 야구이야기만 안하면 대구사람, 광주사람이 다른 게 하나 도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까요.
◇ 국민통합 향해 출범한 ‘동서미래포럼’
이번에 큰 발걸음을 내딛은 ‘동서미래포럼’은 이러한 정치와 야구 이야기조차도 마음의 벽이 없이 서로 주고받으며 가까운 이웃으로 살아보자는 목표를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국민통합정신과 맞닿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 모임을 이끄는 대표적인 인물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자 합니다.
광주의 박주선 대한석유협회장(전 국회부의장)과 대구의 우동기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장(전 대구시교육감)을 중심으로 대구와 광주, 서울 등이 삼각축을 이뤄 전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합세하였다고 합니다.
사실 대구와 광주는 시간상으로 1시간 40분 거리입니다. 직접 만나서 겪어 보면 양 지역 사람들 모두가 똑같은 역사적 소명의식과 나라와 지역발전에 대한 사명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필자는 한국기자협회 광주·전남회장을 맡아 활동할 당시 대구·경북지역 언론인 단체와의 교류를 넓혀가면서 다양한 교류 협력 사업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의 기억으로만 보더라도 영·호남의 심리적, 정서적 거리는 너무나도 가깝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도 분기에 한 번 정도는 대구를 비롯한 전국의 지역 언론인들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동서미래포럼’의 출범은 두 시간도 안되는 거리에 사는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아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세력을 깨뜨리는데 적잖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 김대중 정신은 국민통합·지역주의 극복
지난 3월 28일 광주과학기술진흥원에서 개최된 ‘광주 동서미래포럼’행사에서 박주선 전 부의장은 “호남출신 정치인들이 말로는 김대중 정신을 얘기하면서 행동은 반대로 하여 김대중 정신을 욕되게 하면 안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박 전 부의장은 이날 자신이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보좌할 당시 지역주의 희생양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민통합과 지역주의 타파를 강조한 일화를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국민통합과 지역감정 허물기에 자신의 책무를 다하고 사명감과 의무감을 가지고 일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 예로 1990년 초 서경원의원이 방북사건으로 국회의원직을 잃게 되자 그의 지역구인 전남 함평·영광에 생면부지 대구사람인 이수인 영남대교수를 공천하여 당선시켰습니다. 그 정도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와 지역감정을 허물어 영·호남이 하나가 되고 국민통합의 신호탄이 되길 희망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박 전 부의장은 동서화합은 대구와 광주를 오가는 것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운명을 개척하는 길이다고 덧붙이며 동서화합의 시대적 의미를 강조하였습니다.
‘광주 동서미래포럼’에 기꺼이 참여한 영호남을 비롯 전국에서 참석한 명사들은 눈치 보지 않고 용기를 낸 탈지역주의자로 평가합니다. 이 포럼은 지난 1년여 동안 광주, 대구서 각각 준비모임을 가졌다고 합니다.
지난 2월 24일 대구에서 영남지역을 포괄하는 ‘대구 동서미래포럼’이 공식 활동을 시작한 데 이어 이날 ‘광주 동서미래포럼’ 공식 출정식을 계기로 실질적인 영호남 화합을 위한 정치, 경제, 산업, 사회, 외교 안보, 지역 현안 등 다양한 정책대안 제시와 교류 협력사업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동서미래포럼은 동서화합과 지역갈등 해소를 사실상 ‘국민의 제5대 의무’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또 광주 5·18정신과 대구 2·28정신, 산업화로 대변되는 박정희 정신과 민주화 및 포용·화해의 김대중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입니다.
앞으로 ‘동서미래포럼’의 활동이 국내외 위기극복과 국민통합 에너지로 승화되어 새로운 대한민국 정체성 확립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이 작은 출발이 2024년 다가오는 총선부터 양 지역에서 특정 정당일색의 정치적 지역주의를 허물어 내는 견인차 역할을 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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