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AG]'우물 안 개구리' 민낯 드러낸 남자배구..61년 만에 노메달 반성은 할까?

작성 : 2023-09-23 09:40:00
'우물 안 개구리' 증명한 대한민국 남자배구
프로배구 출범 이후 저변 확대 실패
여자부보다 인기 낮은 유일한 프로스포츠
선수 편의 위해 연고지도 수도권 집중
적당한 연봉ㆍ인기 만족..리그 발전 없어
'그들만의 리그' 유소년 인재 육성도 불투명
▲ 1세트 내준 한국 사진 : 연합뉴스 

◇'광저우 참사' 12강 토너먼트서 탈락

대한민국 남자배구가 처참한 실력을 드러내며 다시 한번 망신을 당했습니다.

임도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배구 대표팀은 22일 중국 저장성 경방성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12강 토너먼트에서 파키스탄에 세트 스코어 0-3으로 셧아웃 당했습니다.

이번 패배로 한국 대표팀은 7~12위 순위 결정전으로 밀려났습니다.

한국 남자 배구가 세계 무대는커녕 아시아 무대에서도 통하지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을 보여준 한판이었습니다.

이번 대회 금메달을 목표로 출전한 한국 대표팀은 첫 경기부터 기대 이하의 실력으로 불안하게 출발했습니다.

세계랭킹 27위인 한국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73위에 불과한 인도에게 풀세트 접전 끝에 패배를 당하며 '참사'의 조짐을 보였습니다.

조별리그 2차전에서는 세계랭킹이 집계조차 되지 않는 최약체 캄보디아를 상대로 승리해 12강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했지만 또다시 세계랭킹이 한참 낮은 파키스탄(51위)에게 한 세트도 뺏지 못하는 졸전을 펼치며 결국 순위결정전으로 떨어졌습니다.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한 것은 지난 1962년 자카르타 대회 이후 무려 61년 만입니다.

1966년 방콕 대회 은메달을 시작으로 지난 2018년 자카르타ㆍ팔렘방 대회까지 14번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2개를 따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도저히 메달권 경쟁력을 갖춘 팀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12강 토너먼트 한국과 파키스탄의 경기 사진 : 연합뉴스 

◇'우물 안 개구리' 지적에도 '귀 막고 눈 감고'

한국 남자배구는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라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프로배구 출범과 함께 양적ㆍ질적 성장을 이루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은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렸습니다.

프로리그의 성장도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한때 프로농구에 비교할 만했던 인기도 시들해졌고, 국내 4대 프로스포츠(야구, 축구, 농구, 배구) 중 유일하게 여자부보다 인기가 떨어지는 종목으로 분류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연봉 수준에 크게 늘지도 줄지도 않는 적당한 관중 규모 등 '그저 그런' 수준의 남자배구는 위기의식조차 없었습니다.

김연경 등 슈퍼스타 배출과 국제무대 상위권 경쟁, 다양한 팬 서비스와 지역 연고 확장 등 남자부보다 더 많은 관심에도 스스로 경쟁력과 인기를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자배구를 보고 배우라는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 파키스탄에 패배한 한국 남자배구 사진 : 연합뉴스 

◇유별난 수도권 집착..유소년 등 저변 확대 기회 놓쳐


특히 프로배구 남자부 팀들의 수도권 연고 집착은 유별났습니다.

야구나 축구, 농구와 달리 대부분 팀이 수도권이나 인근 대전ㆍ충남권까지를 연고지로 선택하며 프로배구리그가 스스로 전국화ㆍ대중화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광주광역시(페퍼저축은행)와 경북 김천시(한국도로공사)를 연고지로 두고 있는 여자부 팀들의 행보와도 대조됐습니다.

프로구단들의 지역 연고지 정착은 단순한 팬층의 확대를 넘어 지역 유소년 스포츠계의 저변 확대를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남자배구만큼은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면서 대는 핑계는 수도권을 떠날 경우 연습 경기를 잡기가 쉽지 않고, 선수들이 원정을 다니며 경기력에 지장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 고작입니다.

다른 프로스포츠, 또는 여자배구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 같은 주장은 억지나 어리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사가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인 전남 나주에 위치한 한국전력 배구단의 경우도 본사 이전 이후 10년째 연고지 이전을 거부한 채 경기도 수원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수원과의 연고지 협약 기간이 끝난 지난 2019년에는 당시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이 직접 선수들까지 만나 연고지 이전을 요청하고 설득했지만 구단은 선수들이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고지 이전 요청을 묵살했습니다.

어느 프로스포츠 종목에서도 볼 수 없는 프로배구 판의 수도권 집착은 결국 '그들만의 리그'라는 조롱 속에 무관심과 인기 하락을 부추겼다는 평가입니다.

▲ '뇌전증 병역비리' 배구선수 조재성 집행유예 사진 : 연합뉴스 

◇인기는 없어도 '비리는 못 빠져'

그런 와중에 병역 비리와 승부 조작 등 각종 사건사고만큼은 다른 프로스포츠에 비해 빠지지 않았습니다.

2012년 당시 한국전력, 삼성화재, LIG, 대한항공 소속 선수들이 대거 승부조작에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특정 팀은 주전들이 대거 포함돼 팀의 존폐가 위태로운 상황까지 내몰렸습니다.

선수들이 상무 입대 당시 승부 조작을 많이 저지른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방부에서는 상무 배구단 해체 검토 지시까지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9년 뒤인 2021년에는 비록 무혐의로 결론이 나긴 했지만 '탱킹'(다음 시즌 영입 우선순위 확보를 위한 고의 패배) 의혹이 불거지며 팬들에게 씁쓸함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에는 병역비리까지 터져 나왔습니다.

OK금융그룹의 조재성이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 브로커에게 돈을 건넸고, 2022년 2월 재검을 통해 4급 판정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조재성은 결국 지난 5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프로배구연맹은 범행 초기 자백을 했고 사회복무요원으로 자진 입대했다는 점을 참작해 '제명'이 아닌 '자격정지 5년'의 징계를 내렸습니다.

승부조작이 터진 것과 비슷한 시기 국가대표 출신의 해설위원이 불법 스포츠베팅을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해당 위원은 합법적인 스포츠토토가 아닌 불법 사설 사이트를 이용한 사실이 드러나 시즌 중 중계에서 배제됐습니다.

'그저 그런' '그들만의 리그'에서 '적당하게' 운영되고 있는 대한민국 남자배구가 '항저우 참사'의 충격을 반면교사의 계기로 삼아야겠지만, 여전히 우려와 불신의 눈길이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남자배구계가 이번 참사를 계기로 분노와 비판 여론보다 더 신경 써야 할 것은 대중들의 관심입니다.

기사 댓글에 팬들이 뭐라고 비판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만큼이나 예전만큼 분노하고 비판하는 팬들조차 없다는 점을 더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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