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났습니다. 석방됐습니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을 받아들여 윤 대통령 석방을 지휘한 결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석방 지휘서 서울구치소 송부는 8일 오후 5시 19분쯤 이뤄졌다고 합니다. 윤 대통령이 체포된 지 52일 만의 석방이고,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이 내려진 지 27시간 만입니다.
그동안 구치소와 헌법재판소를 오갈 때 법무부 호송차량을 타고 다녔던 윤 대통령은 호송차량이 아닌 대통령 경호실 경호차량을 타고 구치소를 빠져 나와 관저로 복귀했고, 차에서 내려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거나 주먹을 불끈 쥐어 들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의 귀환에 지지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흔들며 열광했고, 내친김에 헌재 탄핵심판도 당연히 기각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풀려난 윤 대통령은 기다리던 김건희 여사와 반려견들과 52일 만에 다시 인사를 나눴다고 하고, 김 여사와 정진석 비서실장, 김성훈 경호처 차장 등과 김치찌개 만찬을 했다고 합니다.
만찬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내 건강엔 이상이 없고, 잠을 많이 자서 더 건강해졌다"고 말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구치소는 대통령이 가도 배울 게 많은 곳"이라며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고 말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여 전했습니다.
그냥 대략 짐작해 봐도 오랜만에 꿈같은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 꿈같은 시간을 안겨준 법원과 검찰, 특히 심우정 검찰총장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심 총장의 석방 지휘에 대해 대검찰청은 공지를 통해 "심우정 검찰총장은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을 존중해 특수본에 윤 대통령의 석방을 지휘했다"고 밝혔습니다.
대검은 그러면서 법원 보석이나 구속 집행정지 결정 등 인신구속과 관련한 검찰의 즉시항고 형사소송법 규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려 법률이 개정됐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과거 헌재의 결정 취지와 헌법에서 정한 영장주의 원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즉시항고는 제기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게 대검 설명입니다.
대검의 저 공지와 설명엔 거짓은 없습니다. 하지만 거짓이 없다고 '참'이 되는 건 아닙니다.
헌법재판소가 법원 보석이나 구속 집행정지 결정에 대한 검찰의 즉시항고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구속취소 결정에 대한 검찰 즉시항고에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 적은 없습니다.
형사소송법 제97조 '보석, 구속의 취소와 검사의 의견' 조항 ①항과 ②항은 재판장은 보석이나 구속취소에 관한 결정을 할 때는 검사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고 돼 있고, ③항은 검사는 지체 없이 의견을 표명하여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리고 제④항.
제④항은 "구속을 취소하는 결정에 대하여는 검사는 즉시항고를 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즉시항고를 할 수 있다.
멀쩡히 살아 있는 구속취소에 대한 즉시항고에 대해서는 입을 딱 씻고, 보석과 구속 집행정지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에 대해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 점만 부각하는 건, 물타기이자 왜곡일 수 있습니다.
이런 지적과 비판이 나올 것을 의식해서인진 몰라도 대검은 "과거 헌재의 결정 취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했다는 방패막이를 슬쩍 세워 뒀습니다.
이장폐천(以掌蔽天).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검찰이 언제부터 우리 피고인들의 '인권'을 생각해서 형사소송법에 버젓이 있는 조항, 권한까지 알아서 행사를 안 하는 식으로 피고인의 인권을 챙겨줬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고문으로 조작된 간첩단 사건 재심에도, 명백한 실수나 강압 수사로 억울한 '살인범'을 만들어 낸 조작 수사에 대한 재심에도, 악착같이 항소, 상고, 끝까지 가는 게 그동안 검찰이 보인 모습 아니었는지.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작년 10월, 서울고법은 '통일혁명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각각 사형과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뒤 사망한 고 진두현·박석주 씨 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사건 발생 49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심 재판부는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를 인정하고 무죄를 선고하면서 "오늘의 판결이 유족에게 아주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했는데, 검찰은 누가 봐도 고문 조작이 명백한 이 사건에 대해서도 뭘 더 다투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난해 11월 기어이 대법원에 상고장을 냈습니다.
법정에 나온 진 씨의 부인 92살 박 모 할머니는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는 이 나이에 더는 괴로움 당하지 않도록 이것으로 끝내주셨으면 좋겠다"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검찰은 외면했고 끝내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고문 사건 피해자들에게까지 이렇게, 유족의 표현을 따르면 '한없이 잔인한' 검찰이 왜 윤석열 대통령 사건에 대해선 유독 이렇게 알아서 '한없이 관대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권 일각에선 심우정 총장의 아버지인 심대평 전 충남지사와 정진석 전 비서실장과의 관계 등을 거론하며 심 총장에 대해 '내란 동조범'이라고 바짝 날을 세우며 탄핵 얘기도 꺼내는 것 같은데,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듭니다.
일단 이번 윤석열 대통령 법원 구속취소 결정 관련해서 윤 대통령 기소를 맡고 있는 검찰 특수본 검사들은 법원 구속취소 결정에 즉시항고 등으로 다퉈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심 총장이 이진동 대검 차장과 대검 부장 6명을 참석시킨 수뇌부 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즉시항고 포기 결론을 냈고 이같은 만장일치 의견을 특수본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찍어 누른 겁니다.
그래서 궁금한 게, 뭔 일만 있으면 이프로스 검찰 내부망에서 온갖 사안에 대해 콩 볶듯 시끄러운 검사들이, 이거 관련해선 이렇다 할 의견들을 개진했다는 기사가 없는 것 같은데, 이거에 대해선 왜 이렇게 별거 없이 조용한 거지 하는 궁금함입니다.
암튼 검찰도 검찰인데, 지금 약간 가장 당혹스럽고 황당해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 윤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을 내린 지귀연 부장판사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윤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 배경엔 공수처의 내란 수사권 관련해 검찰이 당연히 즉시항고를 해서 상급심 판결을 받아보자는 취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검찰이 당연히 할 줄 알았던 즉시항고를 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떤 법조인은 이를 두고 SNS에 지귀연 부장판사가 "검찰, 너네가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이 없으니 위법 원천무효인 수사와 기소라고 주장을 하는데 그러면 고법이나 대법 판결 받아 보자" 했는데, 심우정 총장이 "어, 지 판사, 당신 말이 맞아. 윤 대통령 석방할게" 이렇게 나온 격이라고 꼬집기도 했는데, 동감과 수긍이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법조계 일각에선 지귀연 부장판사가 묶은 자가 풀어야 한다, '결자해지'가 아닌 '해자결지', 풀어준 자가 다시 묶어야 한다며 윤 대통령에 대해 직권으로 재구속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사안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우려 등 구속 사유가 사라진 게 아니고 오히려 그같은 구속 사유는 더 커졌기 때문에, 구속기간 만료 뒤 기소라는 절차적 하자가 문제라면 해당 구속은 취소하되, 재판부가 직권으로 다시 재구속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실제 구속취소와 재구속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그냥 일반 피고인도 아니고 일단 풀어준 대통령을 판사가 다시 직권으로 구속하는 건, 기왕에 윤 대통령을 석방한 검찰이 윤 대통령 재구속 요청을 할 지도 미지수고, 현실적으로 여러모로 어려워 보입니다.
이 때문에 검찰이 '계산된 착오'로 윤 대통령 석방을 기도했고, 지귀연 부장판사가 이리저리 구속기간 만기에 대한 법리를 비틀어 이에 응답했고, 심우정 검찰총장이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어 윤 대통령을 석방했다는 '음모론' 비슷한 것도 나오고 있는데, 이런 음모론들을 다 믿을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습니다.
검찰의 윤 대통령 구속기간 도과 뒤 내란 우두머리 기소가 실수나 착오일 순 있지만, 적어도 즉시항고를 하지 않고 윤 대통령을 석방한 건 그게 뭐든 의도와 목적을 갖고 행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외도와 목적이 대검 설명대로 '인권' 차원의 것이길 바랍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야당은 심우정 총장의 자신사퇴를 요구하면서 사퇴 안 하면 탄핵을 하겠다고 벼른다고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탄핵을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리 엄중하고 통렬한 문구로 탄핵을 한다 하더라도 우이독경, 소 귀에 경 읽어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작 심 총장이 탄핵에 대해 아파하거나 괘념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면 그렇습니다.
사족을 더 보태자면 다 좋은데, 심우정 총장이 이번 윤 대통령 구속취소 즉시항고 포기, 석방과, 혹시 있을지 모를 탄핵을 훈장처럼 걸고 정치판으로 들어오는 건 정말 안 했으면, 안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기우이길 정말 바랍니다.
음모론과 기우는 거두고. 심우정 총장의 이번 석방 지휘가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 그리고 향후 가령 정권이 바뀌거나 한다면 검찰 조직 전체에 어떤 파장과 결과를 낳을지는 지금부터 더 차분히 지켜봐야 할 일 아닌가 합니다.
이장폐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있는 하늘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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