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1만 7,240km 떨어진 지구 반대편 남극 킹조지섬에 약 20명의 한국인들이 모여 살고있다. 올해로 벌써 38년째에 접어드는 바로 남극세종과학기지다. 세상과의 고립을 자처한 이곳에선 연구원과 기술자, 의사, 요리사 등 분야별로 선발된 월동대원들이 갖은 우여곡절 속에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길고도 짧지 않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에서 '대기과학연구원'의 일상을 이어갈 아빠의 삶을 가감없이 그려낸다. <편집자주>
나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그리고 산등성이 위로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보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어느 날 TV에서 본 남극기지의 연구원과 거대한 빙하 영상을 보곤 이역만리 미지의 땅에 끌렸었다.
그런 어린 시절, 자연에 대한 동경 덕분인지 나는 성인이 되어 기상청에 입사해 기상예보관이 됐다.
공무원 신분이던 10년 전, 나는 세 번째 도전 끝에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제28차)에 대기과학연구원으로 선발됐다.
당시 남극으로 가는 출국 날 아들은 겨우 생후 50일이었다.
아내는 결혼 전 연애 시절부터 내 꿈이 남극월동대원이란 걸 알아서인지, 어린 아들을 두고 남극에 가는 나를 응원해줬고, 그렇게 꿈에 그리던 남극 땅을 밟게 됐다.
그리고 10년 만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남극세종기지행을 마음먹게 된 계기가 생겼다.
국가공무원이던 나는 잦은 발령과 열심히 일해도 쌓여만 가는 업무로 인해 가정에 소홀했고, 3년 전 아내와 이혼하며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을 혼자 키우게 됐다.
뒤늦게 후회하며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잘나가던 국가공무원 신분을 내려놓고 아들과 자동차 세계 일주를 떠났다.
9살 아들과 3대륙 40개국을 여행하고 아들의 일기장을 함께 엮어 여행에세이도 출간했다.
그리고 오는 2026년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 다시 북아메리카의 알래스카부터 남아메리카의 우수아이아까지 아메리카 대륙 종단 여행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남아메리카 여행자에게는 필수인 스페인어를 10년 만에 다시 공부하게 됐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어 공부하기에는 세종기지가 정말 좋을 텐데!'
세종기지가 있는 킹조지섬에는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등 많은 나라의 기지가 있어 자주 교류하곤 한다.
그래서 세종기지에서 생활하면 스페인어를 배우며 자주 써먹기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들이 매주 한 번씩은 엄마 집에 가서 놀다 자고 오긴 하지만, 3년이 넘게 아빠와만 지냈기에, '엄마랑 1년 정도 살면 아들에게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2년 뒤 다시 장기간 여행을 하려면 경비도 필요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아들과 아이 엄마에게 물었고, 긍정적인 답이 돌아와 다시 한 번 세종기지에 지원하게 됐다.
그렇게 운 좋게도 남극세종과학기지 제38차 월동연구대(대장 김원준)에 또 한 번 합격하게 됐다.
"태풍아, 아빠 옛날에 너 아기 때 남극에 갔다 온 거 알지?"
"응, 알지. 나 50일 때 갔었다며?"
"그래. 그런데 아빠 남극에 한 번 더 갔다 오려고 하는데.."
"진짜? 또 갈 수 있어?"
"응. 우리 2년 뒤에 아메리카 여행하기로 했잖아. 아빠는 스페인어 공부도 하고 돈도 벌어서 올게. 너도 영어 공부 열심히 하고 엄마랑 1년만 지내도 될까?"
"그래? 알았어."
올해면 5학년이 되는 아들은 남자 녀석이라 그런지 평소 껌딱지처럼 붙어 지내는 아빠가 1년이나, 그것도 아주 멀리 떠나있을 거란 얘길 듣고도 아무런 감정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조금 서운했지만,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어서 오히려 '잘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동대에 선발된 후 국내에서 다양한 안전 및 직무교육을 받았고, 수도권에 폭설이 내린 지난해 11월 28일 인천공항에 모여 연구소와 가족들의 환송을 받은 후 대원 18명이 함께 남극으로 출국했다.
인천에서 남극세종과학기지까지 가려면 며칠이 걸리는 아주 긴 여정을 소화해야 한다.
항공기만 총 35시간 동안 4번을 갈아타야 하고 세종기지가 있는 킹조지섬에 도착하고도 다시 고무보트로 40분간 바다를 건너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에 남극세종과학기지가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기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 곳이 바로 '남극세종과학기지'일거다.
인천에서 파리를 거쳐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Santiago de Chile)로 가고, 다시 국내선으로 갈아타 남미 대륙의 땅끝 도시인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에 도착했다.
남극으로 가는 연구원들은 보통 이곳에서는 다른 경유지와 다르게 비행 일정에 3일 정도의 여유를 둔다.
남반구에 있는 남극은 12월이 여름이라지만, 킹조지섬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 비행 일정이 자주 변경되기 때문이다.
푼타 아레나스에 밤늦게 도착해 숙소 근처의 한 식당에서 동료들과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다음 날은 근처에 견학할 만한 곳을 보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다.
피곤해 바로 씻고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였다.
'아차! 내 가방!'
조금 전에 저녁을 먹은 식당에 가방을 놓고 온 게 생각났다.
가방과 안에 든 물건은 모두 잃어버려도 상관없는데 여권이 문제였다.
이곳은 곳곳에 CCTV가 설치된 한국도 아니고 남미에서도 작은 도시였기 때문에 너무 걱정돼 바로 식당으로 달려갔지만, 식당은 이미 문이 닫혀있었다.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고 월요일 아침엔 바로 남극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혹시나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으면 나 혼자 합류하지 못해 월동대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기는 상황이었다.
서둘러 인터넷으로 식당 영업 정보를 확인해 보니 다행히 일요일 정오에 문을 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식당에 가방이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었고 만약에 분실했다면 임시여권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푼타 아레나스는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라서 우리나라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없었다.
즉, 임시여권을 발급받으려면 수도인 산티아고까지 가야 하는데 편도 거리가 2,000km가 넘어 자동차나 기차 같은 교통수단으로는 하루 만에 이동할 수 없었다.
또 여권이 없으니 당연히 비행기는 탑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밤새 머리를 쥐어짜며 이런저런 대책을 고민했다.
'아.. 이걸 대장님에게 어떻게 말씀드리지? 시작부터 문제아로 낙인찍히는 거 아닌가? 어쩌지..'
이미 30시간이 넘는 비행에 몸은 너무 피곤했지만,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한 채로 날이 밝았다.
숙소 밖으로 나가보니 모여있는 대원들과 대장님이 보였다.
"대장님, 하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응, 무슨 일이야?"
"죄송합니다. 제가 어제 식당에 가방을 놓고 왔는데 그 안에 여권이 있습니다."
"음.. 오늘이 일요일이라 식당이 문을 여는지 모르겠네."
"새벽에 확인했는데 오늘 12시에 문을 연다고 합니다."
"그럼, 오 반장은 오늘 일정에 참여하지 말고 남아서 찾아보게.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네. 걱정 끼쳐 죄송합니다. 대장님"
대장님의 허락을 받고 숙소에 혼자 남아 식당이 문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영업 시작 시각은 정오였지만, 초조했던 나는 식당 앞 거리를 서성이며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11시경 식당 문으로 들어가는 직원이 보여 쏜살같이 따라가 문을 두드렸다.
이윽고 한 직원이 나왔고 나는 서툰 스페인어로 직원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저 어젯밤 여기서 식사한 손님. 내 가방 안에 여권. 가방 여기 있나요?"
어눌한 스페인어로 묻자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다시 '가방'과 '여권'이란 단어를 말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우여곡절 끝에 가방과 여권을 찾았고, 무사히 남극행 전세기에 동료들과 함께 탈 수 있었다.
푼타 아레나스에서 2시간의 비행 끝에 9년 만에 다시 킹조지섬에 발을 디뎠다.
칠레 공군이 운영하는 활주로에서 러시아 기지가 있는 바닷가로 이동하자 이제 곧 1년간의 월동 생활을 마치는 37차 월동대원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하지만, 고무보트 뒤로 보이는 바다는 대충 보기에도 바람이 초속 10m 이상 부는지 멀리 백 파(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보이는 게 고무보트 운항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스웰만(Maxwell Bay)의 거센 물살을 가로지른 끝에 40여 분 만에 세종기지에 도착했다.
너무 높은 파도에 대원들 캐리어가 일부 바닷물에 빠지기도 했지만, 우리 38차 월동대 18명 모두 한날한시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기지 부두에 올라가자 바로 옆으로 자리 잡은 마리안 소만(Marian Cove)의 빙벽과 세종봉(Mt. Sejong)이 눈에 들어왔다.
10년 만에 보니 정말 예전보다 빙하와 눈이 아주 많이 녹아 있었지만, 여전히 그 아름다움은 도저히 짧은 글로는 표현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세종기지야, 안녕? 잘 있었지?'
- 다음 회에서 이어집니다.
글쓴이 : 오영식 / 오영식 작가의 여행 내용은 블로그와(blog.naver.com/james8250) 유튜브(오씨튜브OCtube https://www.youtube.com/@octube2022) 등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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