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농촌에서 '글밭' 가꾸는 지종선 씨 "정년퇴직 후 귀촌..글 쓰며 지나온 삶 성찰"

작성 : 2025-01-25 09:30:01 수정 : 2025-01-25 13:50:01
회사원, 대학 연구원 등 다양한 삶
노무법인 근무 때 진폐증 판정 도움
6월 말쯤 자전적 소설 탈고할 예정
"인생은 업(業)대로 이뤄진다" 조언
[남·별·이]농촌에서 '글밭' 가꾸는 지종선 씨 "정년퇴직 후 귀촌..글 쓰며 지나온 삶 성찰"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 인터뷰 중인 지종선 씨

은퇴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는 전원생활.

하지만 그 로망을 현실로 옮기는 일은 녹록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준비가 갖춰져야 할 뿐 아니라 낯선 시골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30여 년간 서울과 광주에서 직장 생활을 해온 68살 지종선 씨는 3년 전 퇴직 후 남도의 한적한 농촌 마을에 귀촌해 '안빈낙도'의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가 둥지를 튼 곳은 전남 화순군 한천면 가암리 가옥(加玉)마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조선 중기 문신 양팽손의 후손들이 30여 가구의 집성촌을 이루며 옹기종기 살고 있습니다.
◇ 양 씨 집성촌..인심이 순후한 마을
▲ 가옥마을 표지석

그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은 화순읍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로 가깝고 인심이 순후한 마을이라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보금자리는 108평 대지에 경량철골조로 지은 살림집과 잔디마당 그리고 텃밭에 감나무와 자두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습니다.

그는 소박한 이 집에 들어와서 학창 시절부터 하고 싶었던 글쓰기로 소일하고 있습니다.

광주에서 유명 문인들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 유명한 고등학교를 다녔던 탓에 오래전부터 시와 수필을 틈틈이 써 왔습니다.

▲ 마을 안 돌담길

이제는 퇴직을 하고 나니 지나온 삶을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자전적 소설을 집필 중입니다.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필자에게 70년 가까운 삶의 이력을 곡진히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청년기에 문학도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서울 소재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 눈 덮인 가옥마을 전경

◇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해 10년간 근무
그리고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해 10년간 근무하면서 과장으로 승진해 남부럽지 않은 직장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부친의 병환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고향 광주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노무법인 호남본부장으로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노사문제가 첨예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던 시기였습니다.

그는 노무법인에서 기업들을 상대로 근로기준법에 맞게 사규를 정비하고 산업재해 발생 시 적법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컨설팅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이 일을 수행하면서 간혹 산업재해를 당하고도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 권리 주장을 하지 못하는 근로자들에게 도움을 준 것이 큰 보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 마을 당산나무

광주 하남공단 소재 부품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프레스 작업 중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는데, 사업주가 산재보험료 할증을 우려해 공상으로 처리하자고 제안하자 설득해서 산재로 인정받도록 해주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화순광업소 탄광 근로자가 퇴직 후 폐에 이상이 발생해 진폐증 진단을 받으려 했으나 시간이 오래 경과되었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것을 그의 끈질긴 노력 끝에 산재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례를 계기로 다른 퇴직 광산 근로자들도 진폐증 진단을 받아서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 남모를 아픈 사연도 많이 겪어
그는 노무법인에서 10년간 근무하다가 모 대학 연구소의 사업화추진단장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10년간 재직하면서 기업들과 기술 및 제품 개발을 진행하는 산학협력 등 업무를 맡아 처리했습니다.

이후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해 이사장으로서 일하다가 2023년 퇴임했습니다.

퇴임 1년을 앞둔 2022년 귀촌을 결심하고 한천면 가옥마을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고요한 자연 속에서 70년 가까운 세월을 되돌아 보고 글로써 살아온 발자취를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주변 지인들은 나의 인생에 대해 비교적 여유로운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곤 하지만 남모를 아픈 사연도 많았다"며 "사기를 당한 적도 있고 좌절을 겪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고 토로했습니다.
◇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행복"
▲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서재

그는 인생은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라는 말처럼 자기가 쌓은 업(業)대로 이뤄진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인과응보의 법칙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자전적 소설의 주제 역시 이와 같은 핵심 메시지를 담아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한 성공했다고 교만하지 말고, 뜻대로 안 됐다고 상심하지 않아야 된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양심에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게 행복한 삶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영모재 전경

그는 당초 이 자전적 소설을 지난해 연말까지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오는 6월 말쯤 탈고할 예정입니다.

마을 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내고 있는 그는 자전적 소설이 마무리되면 가옥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해 보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마을 일대에는 영모재를 비롯 대대로 이어온 마을의 역사 유산들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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