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잊혀진 호남 고대..'전방후원형 고분'

작성 : 2019-07-29 05:24:37

【 앵커멘트 】
전방후원형 고분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영산강 일대에서 발견되는 고분 양식인데, 일본의 고대 고분 양식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연구는 물론 발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요.

이 때문에 일본의 역사 왜곡의 근거로 이용돼 왔는데요.. 실태와 문제점을 먼저, 이준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
고분 내부가 가림장치 하나 없이 그대로 노출돼 있습니다.

윗 부분에는 발굴하다 남긴 유적들이 그대로 쌓여있습니다.

6세기 무렵 축조된 46미터 길이의 함평의 전방후원형 고분입니다.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돼 2013년 기초 발굴조사가 진행됐지만, 이후 정비사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으면서 6년째 방치돼 있습니다.

주변 고분 20여 기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움푹 패인 봉우리는 도굴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소형 고분들은 주변 나무들과 뒤엉켜 흔적 조차 찾기 힘듭니다.

▶ 인터뷰 : 이정호 / 동신대학교 고고학 교수
- "굉장히 안타까운 상황인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 언제든지 다시 붕괴가 이뤄질 수 있거든요"

담양의 또 다른 전방후원형 고분입니다.

사다리꼴 모양의 고분 앞 부분에는 누군가 묘를 조성해 놨습니다.

나머지 부분에는 수풀이 우거진 채 방치돼 있습니다.

이 담양 월성리고분군도 전라남도 기념물이지만 땅 주인에게 유적지를 맡기다 보니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 인터뷰 : 김상민 / 목포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 "(이런 경우) 정확한 현상을 토대로 복원, 정비, 관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라 경주, 백제 그리고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가야에 비해서 영산강 유역의 고분들은 정비가 잘 안되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전방후원형 고분은 관리 부실뿐 아니라, 우리 역사 교과서에서도 소외 받고 있습니다.

시중의 국내 중·고교 역사교과서 17종을 모두 살펴봤습니다.

전방후원형 고분을 소개한 책은 단 한 권도 없습니다.

역사 왜곡을 비롯한 민감한 일본과의 관계가 부각되며, 고분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더디게 진행됐습니다.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형 고분 14기 중 3기는 아직도 발굴조사조차 실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 인터뷰 : 이영철 / 대한문화재연구원 원장
- "일본에 수천 기가 고분 형태가 한반도에 있다고 해서 그게 수적으로 열세하니까 (일본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라고 하는 우려 때문에 (그동안) 잘 다루지 않았습니다"

【 앵커멘트 】
이렇게 우리가 스스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고분을 방치하는 동안 일본은 한반도의 전방후원형 고분을 비롯한 일본 관련 유적을 꾸준히 역사 왜곡 소재로 활용해 왔습니다.

일본의 한 대형출판사에서 2013년에 발간한 책을 살펴보겠습니다.

제목이 '임나일본부, 알고 계십니까'인데요.

임나일본부, 그러니까 고대 일본이 일본부라는 군정기관을 설치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일본 사학계의 주장을 다룬 책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전방후원분 양식이 일본에서 한반도로 전해졌고.

특히 백제의 힘이 미치지 않은 한반도 남부 지역에 고분들이 분포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 왜곡 사례는 과연 이것 뿐일까요?

이형길 기자가 호남고대사 왜곡의 과거와 현재를 추적했습니다.


【 기자 】
kbc가 입수한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 야쓰이 세이이치가 작성한 한반도 고분 발굴 계획서입니다.

임나 즉 한반도 남부지역과 백제의 고분을 지난 1917년 한 해 동안 각각 100기와 50기씩 발굴하겠다고 나와있습니다.

실제 야쓰이는 1917년 나주지역 고분 5기를 한달동안 파헤쳤습니다.

그 결과 이들 고분군을 왜인의 것으로 해야 한다는 기록을 일본 사학계에 남겼습니다.

▶ 인터뷰 : 정인성 /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조선총독부가 전면적으로 (지원하는) 상황에서 역사 왜곡에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했다는 게 (이런 자료들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죠"

이 같은 고대 일본의 한반도 남부 지배 이론은 뒤늦게 허구로 판명됐고 지난 2010년 임나일본부설 용어는 한일역사공동위원회에서 공식 폐기됐습니다.

실제 일본에서도 임나일본부설은 폐기가 됐을까?

일본 역사 교과서를 직접 살펴봤습니다.

50%가 넘는 채택율을 보인 동경서적의 일본 중등 역사교과서입니다.

한반도 남부의 군사적인 지휘권을 중국의 황제에게 인정받으려고 사신을 보냈다고 적혀 있습니다.

또 다른 이쿠호샤 교과서 입니다.

지난 391년 일본이 한반도에 군사를 출병시켜 백제와 신라를 복종시키고 신하와 백성으로 삼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임나일본부설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 여전히 교과서에 버젓이 쓰여있습니다.

▶ 인터뷰 : 정인성 /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침략 전쟁을 일삼았을 때 했던 일을 (지금도) 한다는 것은 그 교육을 받고 자라나는 젊은이들이 야쓰이와 똑같은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키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소중함을 잊고 광주·전남의 고대 유적을 방치한 사이 일본은 이 역사적 사료를 마음껏 자신들의 역사왜곡 자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kbc 이형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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