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왜 '말○○’일까?" 땅 이름에 새겨진 기상과 숨결[신년포털기획-다시 붉은 🐎처럼]

작성 : 2026-01-09 11:48:22 수정 : 2026-01-09 20:48:27
[2]지명에 숨겨진 말(馬) 이야기
'말 하면 제주?'...전남, 말 지명 216곳 전국의 26% '말의 고장’
영광군 안마도·장흥 천마산·광주 말바우 시장·진안군 마이산
말은 인간과 가장 오래 함께 달려온 동물입니다. 전쟁과 이동, 노동과 생존의 현장에서 언제나 앞장섰고, 속도와 인내, 자유와 도약의 상징이 됐습니다. 다사다난했던 을사년을 뒤로하고 2026년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가 밝았습니다. 불의 기운을 품은 말처럼, 멈추지 않고 나아가라는 의미가 담긴 해입니다. KBC는 신년을 맞아 '말'을 키워드로 광주전남을 중심으로 사람과 역사, 지명과 예술, 일상 속에 남은 말의 흔적을 따라가며 새해 희망과 다짐을 전합니다.[편집자주]


한반도 남서쪽을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 새겨진 말 지명들은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역동적인 삶의 의지와 해학을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2026년의 문턱에서, 그 땅 이름 속에 숨겨진 숨결을 따라가 봅니다.
◇ 바다를 달리는 천연 목장의 기억[전라남도]
우리나라에는 유독 말 관련 지명이 많습니다. 전국에 약 820여 곳이 말 관련 지명을 갖고 있는데 전남은 그 중 약 26%, 216곳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말 지명을 가진 '말의 고장'입니다.

'말'하면 제주도를 떠올리지만 전남 역시 과거 수많은 섬과 해안가에 말을 가두어 키우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천혜의 목장으로 활용됐던 역사가 지명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영광군 안마도(鞍馬島) : "바다 위에 내려놓은 거대한 안장" [전남 영광군]

영광군 낙월면 소재의 안마도는 섬의 생김새가 말안장을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졌습니다. 역사에 처음 이름을 올린 것도 말과 관련됐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영광)에 "안마도(安馬島)는 암·수말 아울러 33필을 방목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실제로 말 500여 마리를 방목했던 '안마도 목장'이 있었던 기록이 전해집니다.

이처럼 안마도는 말안장을 닮은 지형과 말을 키웠던 역사가 일치하는 곳입니다.

▲ 장흥 천마산(天馬山): 천관산이 뻗어낸 힘찬 기세 [전남 장흥군]

전남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에 위치한 천마산은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히는 도립공원 천관산(723m)의 바위 능선이 북동쪽으로 뻗어 내려오다 다시한번 우뚝 솟구쳐 오른 산입니다.

산의 전체적인 형세가 하늘마(천마)가 구름을 헤치고 하늘을 향해 힘차게 비상하는 모습과 닮았다는 의미로 이름 붙여졌습니다.
◇ 절체절명의 순간을 멈춰 세운 기적[광주광역시]
▲광주 동구 학운동 '선거리': "충신을 구한 발걸음"

지금의 학운동 '선거리'는 '말이 멈춰 선 거리'라는 일화에서 유래됐습니다. 조선시대 경양방죽을 축조했던 김방(金倣)이라는 사람이 모함으로 사약을 받게 됐는데 사약을 들고 오던 관원의 말이 광주 어귀인 이곳에서 갑자기 발굽이 땅에 붙은 듯 멈춰 서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전해옵니다.

그 지체된 시간 덕분에 김방의 무죄를 알리는 특사가 도착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이곳을 '말이 멈춰 선 거리' '선거리'라 불렀는데, 지금의 '배고픈 다리' 근처가 바로 '선거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광주 북구 '말바우 시장'과 관련한 말바우 시장 조형물 [광주 북구청]

말바우 시장은 광주의 가장 큰 재래시장 중 하나입니다. '말바우'의 말은 흔히 동물 말(馬)로 오해하기 쉽지만, 이곳은 '크다'는 뜻의 고어 '말'과 '바위'가 합쳐진 이름입니다.

지명 자체에 말(馬)의 의미가 담겨있진 않지만 말바우시장과 가까운 광주 북구청 인근에는 작은 말 형상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기도 합니다.
◇ 건국 신화와 영험한 기운[전라북도]
전북의 말 지명은 조선 왕조의 창업 기운과 맞닿아 있어 유독 장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진안군 마이산(馬耳山)

▲진안군 마이산(馬耳山) [연합뉴스]

조선 태종 이방원이 1413년 이곳을 지나다 "두 봉우리가 마치 말의 귀가 쫑긋 솟은 것과 같다"라고 감탄하며 '마이산'이라는 이름을 하사했습니다. 또 조선 건국 전 이성계가 꿈에서 금척(金尺)을 받았던 산이라는 설화가 깃든 성지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말의 귀 형상만 닮은 것이 아니라 조선 왕조 개국과 깊은 관련이 있는 장소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전주시 마전(馬田): "명마가 잠든 왕의 고향"

전주 서신동 '마전'은 태조 이성계가 전주를 방문했을 때 애마가 죽자 그 넋을 기리기 위해 말을 묻고 주변을 밭으로 관리하게 했다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현재는 도시화돼 '마전교'라는 다리와 지명으로만 남았으나, 전주가 조선 왕실의 발원지임을 증명하는 장소입니다.
◇ 현대 도시 속에 살아있는 역동적 숨결 [전국]
전국 도심 곳곳의 지명 속에서도 말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 말죽거리

우리나라 최고의 번화가 서울 강남 말죽거리. 한양을 드나들던 이들이 말에게 죽을 먹이고 편자를 갈았던 역참의 요지입니다.

과거 소통의 중심지였던 에너지를 그대로 이어받아, 지금도 사람과 정보가 쉼 없이 교차하는 교통·경제의 요지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부산 영도(옛 절영도) [부산광역시]

말이 하루에 천리를 달려 자신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달린다는 '절영마(絶影馬)'의 산지였습니다.

신라시대부터 조선조 중기까지 말을 방목한 목장으로 유명했는데 예로부터 나라에서 경영하는 국마장(國馬場)이 있었으며 명마들이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절벽 위를 달렸던 말들의 기상은 오늘날 해양 수도 부산의 거침없는 추진력의 상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주 성산읍 '고마로(古馬路)'

말(馬)을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성지, 바로 제주도입니다. 제주시 성산읍 '고마로(古馬路)'는 조선시대 국영 목장인 '고마장(古馬場)'에서 유래했습니다.

수백 마리의 말떼가 방목돼 있는 정경이 주위 풍경과 어우러져 영주10경으로 꼽히기도 했고 지금의 지명은 1980년대부터 사용됐습니다.

오늘날 고마로는 역사 속 지명에 머물지 않고 매년 10월 중순 이곳에서 '고마로 마(馬)문화 축제'가 열려 거리 퍼레이드와 말 관련 민속 공연이 펼쳐집니다.

<거침없이 달리는 2026년을 기대하며>

지명은 그 땅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장 짧으면서도 강력한 기록입니다.

병오년 새해, 전국 곳곳에 새겨진 말 지명들은 우리에게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는 용기'와 '끝까지 곁을 지키는 의리'를 이야기합니다.

유독 고단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이제는 지명 속에 잠들어 있던 붉은 말의 기운으로 우리 모두가 새로운 희망을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디딜 때입니다.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

많이 본 기사

랭킹뉴스